백은희(이리북중 교사)
샛노란 이파리를 주렁주렁 매단 은행나무가 온몸으로 가을을 알리는 시월 오늘, 네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구나.
바닷가 작은 학교에서 등굣길을 따라 융단처럼 깔린 노랗고 빨간 단풍잎을 주워 모아 시를 쓰던 열 다섯 살 문학 소녀가 어느새 훌쩍 그만큼의 세월을 뛰어넘어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마주 섰구나.
생각나니?
바다가 보이는 학교 뒷산에서 마흔 아홉 명의 소녀들이 풀밭에 앉아 손수건 돌리기를 하며 산새 소리에 반주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일.
바다 모래톱에 빙 둘러 앉아 생일 잔치를 하던 날, 하늘은 마냥 푸르고 밀가루 속 사탕을 먹느라 얼굴이 온통 하얘진 너희들의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는 파도 소리를 뒤덮었지.
그 여름, 수영을 즐기며 모래 구멍에서 맛을 잡고, 썰물에 드러난 바위에 앉아 시를 쓰다 굴을 캐 먹던 일. 또 저마다의 양동이에 고둥을 가득 담아 그 자리에서 삶아 바다를 찾은 사람들에게 팔았었지. 덕분에 마련한 학급 문고는 그 해의 가을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었니?
가끔씩 전해오는 너희들의 안부 편지는 그 때의 추억으로 인해 길고 아름답더구나.
사랑하는 제자 영임아,
수줍음 많고 책을 좋아해 고독한 문학소녀로 불리던 네가 널 닮은 예쁜 딸을 낳았다니 기쁘기 그지 없구나.
엄마가 된다는 건 세상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분만의 고통만큼 힘든 일이지만, 생명 탄생은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내는 일이란다.
네 아이의 삶이 부디 네 소녀 시절의 추억만큼 아름답고 풍요롭게 이어지길 빌어본다.
네 예쁜 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자연 속에서 삶을 키우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해 가길 바란다.
우리들의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내년 3월, 회갑을 맞으신단다.
네 예쁜 공주랑 나의 두 딸들이랑 손 잡고 우리, 인사드리러 가자.
그 바다는 또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활기 넘치는 가을 풍경을 만들어내겠지?
건강하렴.
/백은희(이리북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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