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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름다운 손길이 기적을 이룬다 - 지명식

지명식(전주대 겸임교수)

TV나 신문에서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를 접할 때마다 ‘가봐야 하는데’ 하는 무거운 마음이 항상 나를 불편하게 하던 중 반가운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전주YWCA에서 12월28일 만리포 사고 현장에 가서 활동할 자원봉사 신청 접수 문자였다. 가족들 모두 참여해서 하루라도 정성을 다하고 싶었지만 평일이다보니 여의치 않아 대학 1학년인 큰아이와 둘이서만 같이 가기로 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남원에서 버스가 출발하여 전주, 익산, 군산에서 회원들을 태우고 사고 현장을 향해 출발해서 만리포해수욕장으로 알려진 모항1리라는 곳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평생 여러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감사문구를 필두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봉사단체는 모두 다녀 갔다’는 플래카드로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회원들은 도착하자마자 대형주차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준비해온 장화 장갑 마스크 들고 현지 봉사단이 지급하는 방제복을 받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방제복으로 갈아입은 회원들의 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을 할 수 없고 모양새가 마치 우주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의 모습으로 보인다. 무리를 지어 백사장에 도착하니 TV에서 봤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잠시 주춤하는 사이 지역봉사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백사장보다 500미터 정도 걸어서 산을 넘어 가면 작업할 장소가 있다고 들려줬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오후 3시, 작업시간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회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걸어가는 동안 백사장에서 여러 단체의 활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부직포 대신 타 지역 Y에서 보낸 수건과 헌 옷가지를 한보따리씩 들쳐 메고 산을 넘어 조그마한 협곡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누가 지시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모래와 자갈밭에 주저앉아 모래밑에 스며있는 기름을 닦기 시작했다. 그 곳에는 대전에서 강원도에서 창원에서 온 봉사자들이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조건 고맙다. 마치 내 집일을 도움 받는 것처럼 한없이 고맙다.

 

바위에 붙어있는 굴과 따개비 껍질 표면이 모두 기름에 절여 있다. 모래 자갈 표면을 걷어 내고 바닥에 스민 기름 섞인 모래를 한삽씩 받아서 옷가지나 천조각에 올려놓고 팔이 빠져라 문질러 닦아댄다. 새까만 기름이 닦이면서 모래의 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삽을 닦으면 수건 2, 3장이 마치 기름속에 넣었다가 꺼낸 것처럼 기름 범벅이다. 그 많은 양을 언제 다하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해야 한다. 겉만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해서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다녀온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래알을 헤아리는 것과 같은 작업 그 자체다.

 

2시간 정도 작업을 했을 물이 들어오니 철수를 해야 한단다.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우리는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철수를 하는 도중 지역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은 고맙다는 말과 맨 처음 오일이 밀려오고 특수부대 대원들이 인간띠를 형성하여 오일 제거 작업을 하는 장면을 설명해주시며 언제나 끝날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직접 눈으로 보이는 생태계 파괴도 큰일이지만 더불어 바다를 끼고 관광객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유원지 영세 상인들은 일 년도 못 버티고 모두 망할 것이란다. 먼 바다에서 잡아오는 것이라 먹고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서해에 놀러 가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인식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 서해안 기름유출 자원봉사도 좋지만 진정으로 서해안을 걱정한다면 서해안 가면 안 된다는 모두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원상복귀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계속 연구 실행해야만 할 것 같다.

 

차가 출발한다. 빗방울이 차창을 때린다. 우리의 Y 아줌마들 정말 대단하다 .그 조그마한 체구로 많은 일은 아니지만 너무 열심히들 했다. 너무 안타까운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 가보지 않고서 얘기하지 말고 한번쯤 다녀와서 더 고민해 보자.

 

모두가 걱정하고, 모두가 안타까워 하고 있는 이 복구 작업이 오늘 내일만 아니라 전 국민이 잊지 않고 계속 장기 경주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곳에 참여한 모든 봉사자들이 바로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지명식(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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