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춘(전북학생해양수련원장)
일전에 타시도 어느 교육청 공무원노조에서 각급 학교의 기능직 공무원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해 부르는 운동을 펼치기로 선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간의 정밀한 사고와 감정, 존재 방식이나 가치관까지도 담아내는 그릇인 언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선생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선생님, 듣기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고 그 뭉클함과 함께 수반되는 책무성 또한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오는데 이 선생이라는 호칭이 언제부터인가 누구에게나 붙여지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쓰여 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어쩐지 이런 현상들이 제 구실을 못하는 선생에게 가해지는 소리 없는 질타임과 동시에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초상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는 위기감을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아서다.
선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유태인들의 랍비나 성서 속에 나오는 선지자, 공자나 맹자, 장자와 같은 고전 속의 선생들을 보라. 그들은 고전 속에서 걸어 나와 지금도 신인류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통한 진리 탐구의 기술을 보면 선생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진리로 내몰고 그 진리탐색의 힘겨운 여정을 그들과 함께 했다. 마치 산파가 해산의 고통을 산모와 함께 더불어 나누며 한 생명의 탄생을 완성시키듯이.....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선생의 존재 방식도 참으로 다양하게 규정돼 왔지만 여전히 공통분모처럼 추출되어야 할 것은, 선생은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중물이란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던 시절, 펌프로 물을 길어 먹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던 한 바가지 물이다. 마중물은 그 자체로서는 보잘 것 없고 불완전하지만 그것의 헌신과 희생을 통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없으면 지하에 고여 있는 지하수를 한 방울도 끌어 올릴 수 없다.
후천적인 시?청각 장애를 평생 숙명처럼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헬렌켈러라는 불완전한 존재 뒤에는 설리번 선생이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다. 설리번 선생은 헬렌이라는 한 무례하고 난폭한 짐승을 오묘하고 창조적인 언어라는 세계로 유도해 준 위대한 선생이었다. 설리번 선생은 앞도 못 보고 들을 수도 없으며 더더욱 말할 수조차 없는 제자를 우물가로 인도해 그녀의 손바닥에 차갑고도 서늘한 물을 쏟아 붓고 그 손바닥에 'W-A-T-E-R'라는 철자를 써 줌으로써 언어의 비밀을 헬렌이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다면 무언가 2%가 부족하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 자신만의 안위를 도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크고 높은 이상을 향하여 노력할 수 있도록 꿈을 심어 주었다. 헬렌은 부단한 순회강연과 저술활동으로 미국 맹인연맹의 기금 조달을 위해 힘썼으며 장애인들이 수용소에서 풀려나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인간답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하여 헬렌은 오늘 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멀쩡한 범부들에게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인물로, 수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구현한 인류 공통의 멘토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쯤 되면 선생이라는 거창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의 책무성은 무엇인가 자명해진다. '선생은 있으되 스승은 없다'라는 세간의 저항도 고깝지 않게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로, 시대의 태도나 가치관을 아무런 저항 없이 투입시키기만 하는 권위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앵무새처럼 파편적인 지식의 조각들이나 외워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스스로 문제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생은 학생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이끌어 내는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학생은 선생을 통하여 자신을 완성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로써 선생의 초상은 분명해진 셈이다.
/이재춘(전북학생해양수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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