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역시 계절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가. 그토록 펄펄 삶아대던 삼복염천도 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들바람속에 실려간 듯 어느새 추억처럼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 등화가친(燈火可親),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성큼 다가올 터이다. 그리고 또 한달여 후인 10월 초순이면 비단 문학도 뿐 아니라 온 국민을 설레게하는 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도래할 것이다. 바로 21세기 들어 잇달아 노벨문학상 수상후보에 오르며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는 민족시인 고은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고은 시인은 지난해까지 7년째 계속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왔다. 특히 최근 3년간은 들러리 후보가 아닌, 매우 유력한 후보로 꼽혀 우리 모두를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를 기다리며 밤잠을 설레게 했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올해도 역시 유력 후보 중 한명으로 올라있다고 한다.
만약 올해에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면 이는 이번 베이징(北京) 올림픽에서 우리가 딴 모든 메달의 무게를 압도하고도 남을 쾌거라 할 것이다.(결코 체육인들을 폄훼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일본은 2번이나 수상한 노벨문학상을 우리도 이제야 비로소 받았다고 해서도 아니다. 그 보다는 지구상에서 2차세계대전 후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국가중 '민주발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유일무이한 나라라 할 한국이 비로소 명실상부한 '문화선진국가'로 발돋움했다는 기념비적 이정표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대시인이 바로 우리 전북출신임을 감안하면 그 감동은 금상첨화 그 이상이라 할 것이다. 비록 시풍은 다르지만 그의 쾌거는 가람 이병기, 미당 서정주, 신석정 시인에 이어 섬진강 시인 김용택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풍류 전북이 낳은 금자탑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몽상이 현실화할 경우 뒤이어 빚어질 사단들을 생각하면 무언가 께름칙하기 그지 없다. 고은 시인의 고향마을에 방치된 생가터의 황량한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 시인의 고향인 군산시 미룡동 용둔마을에는 군산문화원이 세운 '고은 시인 생가터'라는 손바닥만한 안내표지판만 덜렁 서있을 뿐 대시인의 발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생가로 알려진 폐가는 실은 시인이 태어난 집이 아니라 시인의 모친이 노후에 잠시 기거하던 집이다. 그나마 이 집은 시누대 등 잡풀속에 파묻혀 쓰러지기 직전이다.
대시인이 노벨상을 수상하고 못하고를 따지기 전에 군산 생가터를 현재처럼 방치하는 것은 군산시와 전북도의 사실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가 아직 생존해 있다고 해서 마냥 미룰 일은 아니다. 시인은 현재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의 농촌마을에 정주중이다. 자칫하면 훗날 고인시인을 기리는 사람들이 안성시의 노 시인의 문학산실을 찾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안그래도 안성시는 고은시인을 활용한 테마관광을 추진중이라한다.
지난 5월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선생의 추모객들은 현재 그가 태어났고 묻혀 있는 고향 경상남도 통영시보다 노년에 머물며 창작의 업을 쌓았던 강원도 원주시를 더 많이 찾고 있다. 이 때문에 통영시는 뒤늦게 고향에 토지문학관을 짓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민족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하소설의 작가를 길러내고도 원주에 우선권을 빼앗긴 뒤 후회를 거듭하고 있는 통영시의 전철을 군산시가 되풀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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