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8 01:16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사회 chevron_right 환경
일반기사

[이곳만은 지키자-생태보고서] 내장산의 숨은 비경을 찾아서(1)

백양꽃 핀 이조암골, 내장산의 숨겨진 배꼽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지 않았는지 길은 가시덤불과 칡넝쿨로 막혀있다. 긁히고 찔려가면서 겨우겨우 헤쳐 나가니 지피식물와 관목 그리고 큰 키 나무가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그 사이로 흐르는 자그마한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를 스펀지처럼 뒤덮은 네발이끼가 원시의 생명력을 강하게 뿜어낸다. 가을의 전령 백양꽃은 하나 둘 주황색 꽃을 피웠다.

 

이조암골. (desk@jjan.kr)

내장산 신선봉 서남사면에 자리 잡은 이조암 골이다.

 

▲자연생태 고이 간직한 이조암골

 

초입을 넘어서자 제법 물이 많이 흐르는지 계곡을 막은 저수지가 연이어 있다. 멀리서 원앙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어디론가 사라진다. 기껏 숨은 곳이 우리가 가는 길 이었으니 놀란 어린 원앙이 정신없이 수면을 뛰어 도망간다.

 

이조암골서 자라는 들꽃들. (desk@jjan.kr)

 

저수지를 지나 숲에 들어서자 근처에 살면서 오랫동안 이곳을 주목해온 자생식물 연구가인 이용환씨(42)는 "지피식물과 관목, 교목이 조화를 잘 이룬 층상구조 덕분에 햇빛이 잘 들고, 계곡과 함께 잘 발달한 지의류 때문에 습도가 잘 유지되어 자생식물이 다양하고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희귀식물이 많다"고 설명한다.

 

"참, 미끄러지지도 않고 푹신푹신해서 감촉이 좋은데요. 이거 그대로 떠가면 그냥 천연 석부작이 되겠는데요."계곡 주변의 바위를 딛고 오르던 일행의 말이다.

 

고목의 밑 둥의 이끼 위에 뿌리를 내린 어린 비목과 바위를 덮은 이끼 사이로 매달린 일 엽초는 그야말로 자연의 손길이 만든 석부작이다. 개고사리, 솔 고사리 등 양치식물과 어우러져 원시의 생명력과 시공을 초월한 신비로움을 주는 이끼류는 이곳의 생태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종이다.

 

▲백양꽃 등 들꽃 가득한 이조암골

 

좀 더 거슬러 오르니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백양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내장산을 대표하는 희귀식물이자 한국 고유종인 '진노랑상사화', 위도에서만 자라는 '위도상사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사화 종류다. 습도가 높고 자갈과 부식질이 많은 계곡 주변의 반그늘에 자라는 백양꽃은 계곡 주변에 넓은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백양사 인근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내장산 국립공원을 비롯해 거제도와 전남 해안가에 일부 자생한다. 한국 특산변종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일본에서 자라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용환씨는 "멧돼지 때문에 걱정입니다. 내장산 일대에서 백양꽃이 가장 많은 곳인데 뿌리를 다 캐먹어서 요즘 개체수가 많이 줄었어요. 진노랑상사화도 같은 처지"라며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양꽃 군락 주변엔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쉽게 발견됐다.

 

계곡 가장자리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들꽃이 자리를 잡았다.

 

진분홍색 꽃과 흰색 꽃을 피운 이삭여뀌, 삿갓처럼 펼쳐진 이파리 위에 자줏빛 둥근 열매를 올려놓은 삿갓나물, 앵두처럼 붉은 열매를 맺는 죽대아재비가 아직 설익은 진초록 방울을 매달고 있으며, 그리 흔하지 않은 "자주꿩의다리'도 늦은 꽃을 피우느라 분주하다.

 

군데군데 바위틈 사이에 자리 잡은 창포와 바위를 덮은 괭이눈이 눈에 띈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하며 두리번거리던 이씨는 이제 막 잎을 피워 올린 약난초를 찾아냈다.

 

항암효과가 뛰어나서인지 이름만큼 한약재로 유명한 약난초는 내장산 일대가 최북단 분포지다. 겨울을 나는 난대성 식물이라 여름 휴면기를 거친 후 가을에 싹이 돋는데 벌써 한 놈이 진초록 잎을 피워 올린 것이다.

 

내년 사월까지 초록색 잎을 반짝이며 자라다가 5~6월에 꽃을 피우는데 꿀이 꽃잎 끝에 이슬처럼 맺히는데 그야말로 꿀맛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들꽃을 위협하는 것은 서식지를 점점 넓혀가는 조릿대다. 쉽게 세력을 형성하는 조릿대는 지피식물과 희귀식물의 자생지를 덮어 식생을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참을 오르니 오른쪽으로 하늘이 트였다. 덤불에 덮여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안쪽으로 살짝 들어간 곳에 제법 너른 터가 보였다. 옛날 이조암이 있던 자리로 근처엔 가마터도 있었다고 한다.

 

폐사지의 쓸쓸함과 덧없음은 덤불에 묻혔고 주변에서 보이는 기와 조각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조암' 터를 지나니 큰 으름덩굴이 계곡을 가로 막는다. 숲으로 올라 살짝 돌아가니 산초나무 향이 기분을 좋게 한다. 언제 누가 쌓았을까? 제법 큰 돌탑 두 개가 서있는 지점부터 이조암 골의 경사가 가팔라진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숲은 원시 그대로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잘 자란 때죽나무, 생강나무 주위로 단풍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멸종위기종 백운란 자생

 

이 일대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멸종위기종 2급 식물인 '백운란'이다. 제주도와 울릉도, 백운산과 내장산에 주로 분포하는데 서식지 조건은 서로 다르다. 섬에 사는 '백운란'이 흙에 뿌리를 내리는데 내장산의 백운란은 바위 위에서 자란다.

 

이 씨는 서래봉 아래 계곡 바위에 자생하는 '백운란'도 기후변화로 인해 큰 비가 잦아지면서 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며 아쉬워한다.

 

"원래 절대 개체수가 적어 자연 증식이 어려운데다가 꽃이 피는 시기가 길어진 장마철 과 겹치다보니 수정이 잘 안 되는 것도 수가 줄어드는 이유"라고 설명하는 이씨는 종 보존과 복원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멸종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내장산 안쪽보다 이곳의 식생이 다양한 것은 사람의 손길을 덜 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의 평화로움에 기대어 조화롭게 형성된 자연 식생이 무너질 위기에 있다.

 

이조암골 코앞까지 18홀 골프장과 관광호텔, 펜션을 짓는 내장산리조트 사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현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사회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