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봉 교수(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한나라당이 미디어관련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수의 국민들과 시민단체, 언론학자, 언론종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다수당의 수적 우세를 이용해 밀어붙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신문사나 재벌들이 방송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나라당 법안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특히 지역신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언론시장은 현재 소수 거대 미디어 그룹들에 의해 90% 이상이 장악되어 있다. 이처럼 소수의 미디어 재벌이 미국 언론시장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언론사의 소유제한을 지난 30년에 걸쳐 점차 풀어주었던 미국 정부의 언론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1996년 제정한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은 거대 미디어기업의 언론사 소유 제한을 대폭 풀어주어 미디어기업간 합종연횡을 허용함으로써 미국언론 시장의 소유집중을 가속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소수의 거대 미디어그룹에 의해 장악된 미국언론에서 다양한 의견은 사라지고 미디어그룹의 이익에 부합한 소수의견만 제공되는가 하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반면 상업성을 배제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언론사 소유 제한 완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지역신문들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13개의 거대신문 체인들이 미국 신문시장의 절반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문체인인 '게넷(Gannett)'은 미국의 유일한 전국지인 'USA Today'를 비롯해 미국내 102개의 일간신문 외에 약 500여개의 주간지, 소식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디어뉴스(Media News)'는 57개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콕스 커뮤니케이션(Cox Communication)'은 미국내 43개 신문사를, 그리고 '미디어 제너럴'(Media General)'은 25개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거대 신문체인들은 미국 정부의 신문방송 겸영허용 정책으로 신문사 뿐만아니라 방송국도 함께 소유하게 되었는데, '게넷'의 경우 미국 내 23개 TV방송국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3개의 잡지사와 3개의 인터넷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콕스 커뮤니케이션'은 15개의 TV방송국과 80여개의 라디오방송국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디어 제너럴'은 23개 TV방송국을 거느리고 있다.
문제는 지역신문이 소수 거대 신문체인들에 의해 장악된 이후 지역신문에서 지역소식과 지역여론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대 신문체인들은 지역신문을 사들인 이후, 경영합리화를 내세워 기존의 지역신문 기자들을 해고하고 최소의 인력으로 신문사를 운영하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여러 신문에 동시에 게재하고 있다.
결국 취재인력의 감소로 지역언론의 지역사회 이슈에 대한 탐사보도나 심층취재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본사에서 제공하는 기사를 사용해 신문을 제작하다 보니 지역소식이나 이슈는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문체인들이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고 있는데,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회사들은 하나의 취재내용을 신문과 방송 프로그램에서 함께 사용하면서 기존 지역언론 기자들을 불필요한 인력으로 간주해 해고하고 있다.
실제로 '미디어 제너럴'은 지난해 회사 전체 인원의 11%에 달하는 750명을 해고했다. 해고의 명문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취재인력의 부족으로 지역현안과 이슈에 대한 보도는 점차 줄어들고 지역 신문사에서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보의 소비자인 독자와 시청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소비할 권리를 고스란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특히 정보의 독과점으로 인해 편향된 시각의 정보만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제공됨으로써 여론의 왜곡 현상마저 일어나는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신문방송 겸영허용과 미디어소유를 제한하는 규제의 폐지는 결국 지역언론의 역할과 가치의 몰락을 불러왔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관련법이 통과될 경우 지역언론의 말살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지역언론 발전을 위해 정부여당의 미디어관련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최진봉 교수(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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