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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자전송 유감 - 송경태

송경태(전주시의원)

해마다 연말연시의 계절이 돌아오면 그동안 바쁜 한해살이를 하느라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 새삼 그리워지곤 한다. 그래서 다들 이맘때가 되면 송년회니 망년회니 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귀가시간들이 늦어지기 일쑤다. 또한 미처 찾아뵙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전보나 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를 빌어 그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에는 카드나 연하장보다는 손전화의 문자가 손쉽고도 간단하게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 같다. 차가운 겨울 하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수백, 수만 개의 통신 전파들이 서로 엇갈려 날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물론 내 손전화도 예외는 아니다. 세밑과 새해가 이어지는 요즈음, 빨간 불자동차도 아닌 내 손전화에 수시로 사이렌이 울려대고 있다.

 

"여보, 메시지가 온 것 같은데 좀 읽어줘요."

 

"잠시만 기다려요. 화분에 물 주던 것 마저 주고 읽어 줄게요."

 

오래 기다린 끝에 집안일을 마친 아내가 다가와 물기 있는 손으로 손전화를 열어준다.

 

'새해에도 소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주 안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늘 행복하소서'

 

'그동안 보살펴 주시고 어쩌구 저쩌구……'

 

'새해에도 어쩌구 저쩌구……'

 

기다리는 동안 몇 통의 문자가 더 들어와 있었다. 손전화를 손에 잡아보니 액정화면도, 배터리도 갓 구운 붕어빵처럼 뜨끈뜨끈하다. 앞으로도 새해의 분위기가 가라앉기 전까지는 좀처럼 식지 않을 것이다.

 

시의회 활동과, 각종 단체 활동, 봉사 활동 등 많은 사회 활동을 하다보니 이맘때가 되면 하루에도 수백 통이 넘는 문자메시지와 영상메시지를 받게 된다. 많은 메시지 수신량은 마치 나의 존재 강도를 느끼게 하는 척도 같아 기분이 자못 흐뭇해지기도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나를 기억해 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안한 마음도 상존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문자메시지 한 통 제대로 전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때에 답장을 보내 주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나는 첨단의 이기를 활용하는데도 어려움이 참 많다. 문자를 작성하는 것은 큼지막한 버튼을 점자 더듬듯이 누르며 간신히 성공할 수도 있지만, 화면의 문자를 판독하는 일이며, 내가 작성한 문자에 오타가 없는 지 일일이 확인하는 일 등, 전송버튼을 누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복잡하여 나에게 문자전송이란 먼 꿈나라 같은 이야기다. 요즈음에는 미취학 어린아이에서부터 팔순 어르신까지도 누구나 척척 잘 다루는 만인의 필수품인 손전화인데 나는 왜 그 세계에서 조차도 이방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나는 또 아내를 부른다.

 

"여보, 이 분에게 답 문자 좀 보내줘요."

 

"다림질 마치고 해 줄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

 

아내가 나의 전화 시중만을 드는 개인비서가 아니기에, 나는 또 아내의 일이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손전화는 움직이는 소형 컴퓨터다. 다양한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는 첨단 이기며, 전 세계를 누비며 각종 정보를 소통시켜 주는 요술 상자다. 그러나 나는 고기능이며, 고가이기도 한 손전화를 수신·발신의 가장 단순한 기능 밖에는 활용할 수 없다. 혹은 도착 문자를 음성으로 판독해주는 일부 한정제품을 사용해 문자메시지를 겨우 들을 뿐이다. 또한 손전화 사용을 위해서는 버튼 인지를 위한 점자라벨을 부착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렇듯 나에게 손전화란 돼지꼬리처럼 꼬불꼬불한 전화선만 없을 뿐이지 거의 구식 전화기나 다름없다. 남들처럼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과 벗들의 사진을 찍고 저장하는 등의 소중한 앨범으로 사용할 수도 없으며, 여행 중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도 없다. 그뿐인가. 일정 관리와 주소록 관리 등의 움직이는 비서실 역할은 커녕 메모지 역할조차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고가의 기기값, 만만찮은 통신비 등 손전화를 사용하는 여느 사용자들과 똑같은 대가를 지불했는데 왜 우리만 차별받아야 하는가? 가끔씩 나는 이렇게 항변해 보지만 다들 자신의 영역 밖의 일이라 치부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해 버린다. 사회 환원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을 들먹거리는 기업들도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선진복지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는 정부에 항의하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면서 회피해 버린다. 이렇듯 빠르게 발전하는 것인지, 빠르게 달아나는 것인지 모를 첨단의 이기 앞에서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우리들은 뒷꽁무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사람구실을 좀 하려면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사생활을 창고에 접어두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아내를 부르고, 아내는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여보. 또 메시지가 들어왔어요."

 

"밥 먹고 읽어 줄게요."

 

/송경태(전주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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