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철(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그날 아침 대통령께서 위중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김해로 향하는 저는 한마디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위중하시다니? 뭐가 위중하시다는 건가? 계속되는 검찰의 치졸한 압박 수사에도 의연하셨는데. 두달 전만해도 봉하마을 오리농법 얘기로 꿈에 부푸셨던 분인데. 사저 비서관들의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었습니다. 뉴스 속보를 틀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고…'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해 초 봄, 저는 안도현 시인과 함께 봉하를 찾아 뵌 적이 있습니다. 퇴임하신 후에 한번 찾아뵙고자 했으나, 밀려드는 관광객들 틈에 누가 될까 미루다 마음먹은 일입니다. 당일 새벽 저는 '홍도주막'에서 막걸리 두 박스, 삭힌 홍어 20인분, 묵은 김치 등을 준비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술이 신다고, 대통령께서 어떻게 이런 천한(?) 음식을 먹냐고 걱정을 하는 주막 아주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봉하로 갔습니다.
안도현 형은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뵙는다고 했습니다. 준비해간 시집 몇 권과 시창작 책을 드리자 대통령께서는 형의 시를 몇 번 읽은 적 있다고 말씀하시며 '너에게 묻는다'를 기억해내셨습니다. 그리고 또 형의 책을 펼쳐보시며 물으셨지요. '이 책을 다 읽으면 시를 쓸 수 있냐고?'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자꾸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즈음 대통령께서는 참모들에게 미안하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지요. 당신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샅샅히 뒤짐을 당하고 검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감옥살이를 하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다지요.
준비해간 막걸리와 삭힌 홍어를 안주로 점심을 드시고 난 후에 집구경을 시켜주시겠다며 사저를 나섰습니다. 봄날이었습니다. 안도현 형과 대통령께서 앞장을 서시고 저는 뒤를 따랐습니다. 부엉이 바위가 보이는 곳에 가서는 어렸을 적 뛰놀던 곳이라며 지금은 부엉이가 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호문제 때문에 주변 대나무 밭을 다 파헤친 것이 안타깝다고 하시자 안도현 형은 산죽을 가져다 심으면 괜찮을 거라 하셨지요. 두 분이서 '금낭화'와 '돌나물', '깽깽이풀' 같은 주변 들풀들을 얘기하는 동안 제가 전주로 한번 모시겠다고 했더니 그 특유의 화법으로 '죽이나 다 끓고 난 뒤에 한번 가자'고 말씀하셨지요.
7일 간의 국장을 치르고 전주로 돌아온 지 다시 일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께서는 우리들의 대통령이셨습니다. 지는 싸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지역감정에 맞서 온몸을 던진 정치인보다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서민 대통령보다도, 검찰권력을 포기하고, 언론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투사보다도, 밀짚모자를 쓰고 손녀를 태운 자전거 패달을 밟는, 동네 수퍼에서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있는 영락없는 촌 할아버지셨습니다. 고향 마을을 위해 들녘에 오리떼를 풀어놓고 야산에다 장군차를 심어 보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농사꾼이셨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좋은, 우리들의 대통령을 부엉이바위 아래로 몸 던지게 했는지 곱씹어보고 또 곱씹어보는 아침입니다.
/정동철(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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