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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⑤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

고대 농경문화의 상징…일제 수탈의 역사 현장

벽골제 5개의 수문중 하나인 장생거.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단지 내에 있다. (desk@jjan.kr)

우리나라 저수지의 효시로 알려진 김제 부량면의 '벽골제(碧骨堤·사적 제 111호)'가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007년 서울대 이영훈 교수(경제학과)가 소설가 조정래씨의 역사소설 '아리랑'의 역사적 근거를 비판하면서 '벽골제는 저수지가 아니고,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방조제'라는 새로운 학설을 뉴라이트재단의 기관지인 '시대정신'에 발표한 게 계기다. 이는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만경평야가 소설의 내용과 달리 19세기까지 황무지였으며 일제 식민시대 대규모 수리사업을 통해 비로소 곡창지대로 변모했다는 주장을 부연하면서 이교수가 내놓은 학설이다.

 

물론 조정래씨와 관련 학자들의 반박도 이어졌다.

 

논란의 중심이 된 조정래의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하에서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탈의 역사를 다룬 역사 대하소설(전 12권)로 김제 만경들녘이 그 배경이 됐다.

 

김제시는 지난 2003년 5월 동진강 지류인 원평천 옆 벽골제 단지 안에 아리랑문학관을 개관했다. 또 삼국시대(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 벽골제의 수문이 남아있는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벽골제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립, 1998년 개관했다. 이 전시관은 2006년말 박물관으로 등록,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2009년 10월 전시개선사업을 마치고 재개관했다.

 

역사소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저수지·방조제 논란'과 상관없이 벽골제는 농경을 위한 고대사회 대규모 수리시설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그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 관계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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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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