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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년의 꿈, 밀레니엄의 청사진 - 신진국

신진국(전자부품연구원 전북본부장)

 

몇 해 전, 모 방송국에서 광개토대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욘사마 배용준의 연기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네 개의 신물이 어우러져 흥미를 돋구었었다. 고구려 사신도로 널리 알려진 사 신(神)들이, 후백제 때부터 전주를 수호하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이 적다. 서기 900년 견훤은 광주에서 전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기며 백제의 부흥을 꾀하고 도시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지리적으로 전주는 풍남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완산칠봉, 우측에 기린봉, 남쪽에 승암산, 북쪽에 금암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완산칠봉은 멀리서 보면 용이 길게 내려앉은 형상으로 청룡을 상징하며, 완산주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산이다. 전주의 동쪽 모든 산을 휘하에 둔 채, 전주를 호위하는 기린봉은 백호에 해당한다. 견훤의 왕궁 터가 있는 남쪽의 승암산이 주작을, 지금의 KBS 방송총국 정도의 금암산 자리가 현무로 짐작된다. 견훤이 통일국가의 제왕이 되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주에 사신을 만들었다는 학설인데, 아무튼 이들의 도움인지 재해없는 청정도시, 천년전주를 자랑해왔다.

 

천 년 전, 견훤 왕은 미래를 기대하며 이렇게 도시를 계획했었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의 배포는 웅장했던 모양이다. 마상창을 거머쥔 기마병을 거느리고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했던 광개토대왕, 거대한 해상 왕국을 이루어 일본과 중국의 황해 연안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보였던 백제인들, 4군 6진으로 지금의 한반도 영토를 만든 세종대왕, 13척의 배로 세계 해전사의 기적으로 남은 이순신, 일제 시절 말달리던 선구자,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기본적인 DNA는 '웅대한 호연지기'였나 보다. 그토록 호방한 기질을 지녔으니 반만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내고 우리의 말과 글을 보존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한편, 2010년 오늘의 자화상은 어떤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 부의 양극화, 계층의 세습화, 강남불패, 학원에 길들여지고 있는 어린이들, 말살되고 있는 미래의 스티브 잡스, 성징(性徵)과 도전 정신을 상실해가는 초식남과 애완남, 이공계 기피 현상과 이공계의 블랙홀로 전락한 의전원, 중국에 점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주력 산업들과 잃어가고 있는 성장 동력들, 취업 학원이 되어버린 대학, 고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취업 인기 일 순위가 된 공무원…. 이런 단어들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고구려의 철기군, 해상왕국 백제, 말달리던 선구자….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천 년 전의 견훤왕은 천년을 생각했었다. 이번 밀레니엄이 시작 된 지 겨우 십년, 우리는 무엇을 내다보고 있는가. '잃어버린 십년 논쟁', 남은 990년도 이렇게 허비할 것인가? 정부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 미래를 향한 아젠다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민족의 얼을 되살릴 그런 청사진을, 당파싸움에 매달려 국제정세를 오판하는 실수는 선조 임금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우리 젊은이들도 고시, 대기업, 토익에 마냥 줄설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핏속에 남긴 위대한 도전 정신, 그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밀레니엄의 주인공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달빛아래서 내일을 준비하며 하늘을 찢을 듯 울어대는 늑대 같은 야성을 회복하여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만이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진국(전자부품연구원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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