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남원 성일유엔아이)
예정에 없던 회의가 열렸다. 박성재(가명)씨 때문이었다. 정신장애가 있는 박성재씨는 얼마 전까지 우리 시설에서 생활하다, 재활 훈련을 거쳐 겨우 사회로 복귀한 참이었다. 그런데 지적장애가 있는 정은(가명)씨를 만나 동거 하더니 이제 곧 아이 아빠가 된다고 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데도 축복 대신 걱정이 앞섰다.
"사회로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다 혹시 재발하면 어떡하죠?"
"그러게요. 보통 사람들도 아이 키우는 게 만만치 않은데 두 사람이 할 수 있을까요? 시간 맞춰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매일 같이 씻기고……."
수첩 옆에 놓인 전화기가 드르륵거리며 움직였다. 박성재씨였다. 정은씨 출산이 임박한 모양인지 집으로 와 달라고했다. 숨 한 번 제대로 고르지 않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전해졌다. 문은 열려있는데 아무도 없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방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조용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저희 산부인과에 있어요. 정은씨가 집에서 혼자 애를 낳고는 119 구급차 타고 왔는데요, 둘 다 건강해요."
아까와 달리 한결 차분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활기찬 목소리, 밝은 얼굴로 반겼을 정은씨가 핀잔 섞인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선생님, 쉿! 우리 애기 자요"
아차차! 그제서야 이 집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새벽에는… 어… 애기가 잘 안 자요. 그래서 오빠가 많이 봐요. 아고 다리야. 다리 저린다."
애 보느라 힘들고 피곤할 정은씨를 위해 대신 분유를 먹이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마다했다. 몇 번을 청해도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제가 할래요. 전 엄마잖아요~."
몇 분이면 먹을 분유를 먹다 자다, 먹다 자다를 반복하느라 아이는 20분이 넘도록 분유병을 물고 있었다. 정은씨는 그런 아이를 사랑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린 다리를 애가 깰까봐 어쩌지도 못하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면서 말이다.
분유를 다 먹은 아기가 아빠 품에 안겼다. 그가 능숙한 솜씨로 트림을 시켰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 지 눈을 맞추며 방긋 거렸다. 그걸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그칠 줄 몰랐다.
박성재씨 집을 찾을 때마다 나는 내 편견이 하나 둘 깨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는 집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정돈된 집안 모습이며, 도와주는 사람 없이도 훌륭하게 육아를 해내는 박성재씨와 정은씨 때문이다. 두 사람의 아기가 태어나기 전, 회의실에서 늘어놓았던 걱정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선생님, 제 이름 뒤에 정신장애인이라는 호칭이 붙으면서부터는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평범한 삶에서 느끼는 기쁨이 제게는 정말 소중해요."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 김은영(남원 성일유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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