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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리산 둘레길

이병채(남원문화회장)

최근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둘레길이 온 국민의 관심속에 떠오르다보니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산길, 바다길 등이 급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걷는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있어 여행의 가장 매력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다보니 둘레길을 흉내내며 전국 방방곡곡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말 이 길에 들어서면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많은 이웃들을 만날 수가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제와는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 대개는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었고 등산복이나 운동복을 입었다. 이 길에서 구두에 넥타이를 한, 하이힐을 신은, 책가방을 멘, 시장바구니를 든, 휠체어를 밀고가는 일상의 이웃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이 길은 분명히 일상의 길이 아니다. '월빙산책로'니 '비치로드'니 하는 유별난 이름들을 붙인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대개 이런 길의 특징은 출발점과 종착점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일정한 거리마다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현재의 위치와 종착점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또한 제도화된 규칙은 아니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함부로 옆길로 빠지지 말아야 하고 뒤돌아가지 말아야하며 일단 출발을 했으면 힘들더라도 완주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꼭 걷기대회 같은 기분이다. 종착점에 도착하면 큼직한 메달이라도 줄것 같은 기분이며 완보를 하면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는 분위기들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걷기운동을 하이킹이라 부르며 또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서 더욱 고강도의 체력과 장비가 수반되는 걷기는 트레킹이라고 한다. 이는 분명한 목적지까지 일정한 구간을 걷는 운동의 일종이며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의 한 종류이다.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이 길은 운동하는 사람과 여행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길이라 하겠다. 아무튼 제주의 올레길 덕분에 지리산에도 둘레길이 생겨 걷기 운동도 하고 짧은 여행도 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단련하는 일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길에 불만이 좀 있다. 길이란 공적 공간이므로 길을 만들때는 가장 먼저 공공의 가치를 생각해야한다. 공공의 가치가 있어 보다 우선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부터 내는 것이 순서여야 한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명성에 눈이 멀어 산길, 바닷길을 급조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듯 싶다. 그런 까닭에 분명히 새로운 길이 많이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이웃집 가는 길이 없고 재래시장 가는 길이 없으며 학교 가는 길이 없어서 우리는 오늘도 자동차길 갓길을 목숨 걸고 걷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가장 우선해서 필요한 길은 안전한 인도와 통학로이다. 둘레길 보다는 편안하게 학교길·통근길을 걷는 것이 생활화 됐으면 한다.

 

이처럼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특별한 길을 만드는 사이에 우리네 옛길, 일상의 생활길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삶이 있고 추억이 있고 역사가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는 옛길은 자동차 길에 밀려 온통 사라져가고 있고 공원은 아스팔트로, 강은 시멘트로 뒤덮여 도심의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곳이 없다. 전국 유명 산에 몰려드는 등산객처럼 일상 생활에서 보행길이 좀 붐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이병채(남원문화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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