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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물에 묻고 가슴에 묻는 고향

허호석 (시인· 진안예총 창립회장)

나의 고향은 용담호가 있는 마이산골이다. 진안군 상전면 금강상류 강가 양지바른 마을이었다.

 

10년 전 직장 명퇴를 계기로 고향에 돌아가 조용히 글을 쓰겠다는 그 해는 용담댐 건설이 한창이었다.

 

2000년, 어쩌면 고향에 돌아가려는 그 해에 고향이 없어지던게 우연이던가? 당시, 나의 고향집이 철거 된다는 날 고향집을 찾아가 손 때가 묻은 집안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아픈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 후, 불도저 삽날에 집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 나도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진안군 5개면 2800세대 1만3000여명의 수몰민을 만든 용담호 물속에 실향민으로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향이 있을 때는 몰랐다. 고향이 없어지고 나니까 그렇게 그리운 것을…. 고향은 추억이 있어 그립다고 했던가. 마이산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곳, 들로 산으로 강가로 내달리던 산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난 속에 어렵게 지냈지만 울타리 사이로 호박죽이라도 넘겨주던 옛 정서가 새롭다. 찾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갈 길 몰라 머뭇거리는 나그네처럼, 뿔뿔이 흩어져 설땅이 없는 허공에 허둥지둥 살아갈 이산 실향민이 된 것이다.

 

당시, 진안군에서 수몰 실향민을 위한 망향의 동산을 조성하는 데 그에 세워지는 망향탑에 망향의 시를 새기기로 되어 있는바, 군에서 수몰민 시인 나에게 망향탑에 새길 시를 써달라는 청탁을 해왔다.

 

「물에 묻고 가슴에 묻고」란 제목으로 시를 쓰려 엎드렸는데 어쩌면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시를 쓸 수 없었다.

 

이후, 나는 고향을 자주 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니, 고향이 없어졌는 데 고향에 자주 간단 말인가, 고향땅은 비록 물에 잠겼어도 고향 하늘만은 용담호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면 호숫가에 서서 혼자서도 손가락을 가리키며 '우리집이 저기쯤이야' 중얼거리며 망망한 호수의 침묵에 잠기곤 한다.

 

옛날, 내가 대학에 진학한 것도, 평생 교직생활을 한 것도 오늘날 내가 명예로운 것도 내 유년의 파란 고향 하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고향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10년전 명퇴 즉시 고향을 드나들게 되었다.

 

<물에 묻고 가슴에>

 

물이 차오른다. 차오른다 처마 끝 하늘까지

 

아! 모든 것들이 잠겼노라, 모든 것들을 잃었노라

 

금강 상류 하늘 아래 산동네 인삼향기 그윽한 고장

 

죽도천 골골에 물소리 새소리 아름다운 고장,

 

울타리 사이 얽히설킨 넉넉한 정

 

어허 어허 가난도 좋아라 하늘밭에 사는데

 

우리들은 수몰민 그 누가 지은 이름인가.

 

우리들의 태를 묻고, 조상의 뼈를 묻은 영혼의 땅

 

삶은 터전에, 여기 망향의 탑을 세워

 

고향 상실의 슬픔을 물에 묻고 가슴에 묻고

 

실향의 아픔을 달래노라

 

우리 비록 흩어져 옛 생각이 그리운 나그네일지라도

 

우리들의 고향 하늘만은 영원하리니

 

고향이 그리울 땐 망향의 동산에 올라

 

용담호 저 파란 물에 옛 추억의 구름을 띄우리라.

 

/ 허호석 (시인· 진안예총 창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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