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전주시의회 의장)
한 해가 갔다. 친구들이 휴대폰으로 보내온 모악산 일출과 함께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벌써 하루가 간다. 천막 속에서….
전주에 진출한 재벌유통업체들에게 영업시간 2시간 단축과 매월 3일 휴무를 요구하며, 전주 서신동 대형 마트옆에 천막을 치고, 먹고 자는 생활이 2일로 열흘을 훌쩍 넘었다.
재벌유통업체들의 영업시간 2시간 단축과 월 3일 휴무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 이것 밖에 없나 하는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시작한 천막생활은 사실 분노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지난 해 김종훈 정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개정안 처리 불가' 발언을 들으면서, 이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대들고 싶어서 화가 났다.
누더기가 되어버린 '상생법'과 '유통법' 개정안이 비굴한 타협과 로비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울분이 솟구쳤다.
하지만 국제협약에 위배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과 대재벌들의 소매업 진출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설명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독일은 1,200㎡ 이상 소매시설이 허가제이고 기존 상권의 매출이 10%이상 손실이 예상되면 불허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뒤통수를 걷어차인 배신감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테스코의 본사가 있는 영국조차도 더 강력하고 엄격한 규제 속에서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허공에라도 소리를 질러야 분이 풀릴것 같았다.
대형 할인매장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표현되는 재벌유통업체들의 소매점 진출은 방죽 속에 외래어종 '베스'를 풀어 넣은 것과 같다. 그 넓은 운암저수지에 몇 마리가 서식한 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서 토종물고기의 씨를 말려버린 게 바로 베스 아닌가.
최근자료에 의하면 2009년 이후 SSM 진출 지역 인근점포 (조사대상 3,144개)의 매출액은 평균 48% 감소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267개 SSM이 670여개로 늘고, 대형할인매장이 300개에서 411개로 늘어난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소형 슈퍼마켓은 2만여 곳 이상이 문을 닫았고 재래시장의 총 매출액은 30% 가까이 토막 났다.
단순한 셈법으로도 대형 할인매장 1곳이 문을 열고 SSM 1개 점포가 개장하면, 재래시장은 총 매출에서 100억을 빼앗기고 50개의 동네 슈퍼가 문을 닫는다.
이는 수중 생태계의 천적 없는 포식자 베스보다 더 심하다.
전주에서도, 재벌유통업체 5곳 매장의 1년 매출액은 약 3,500억원인데 비해, 전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상가점포 1,410곳의 매출액은 1,5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부자독식과 지역자본의 역외 유출이 지역경제의 심각한 불균형과 모순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 캄캄하다. 아니, 조금이라도 몰락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데 힘이 없어 약오르고 화가 난다.
천막 옆을 지나가는 시민의 목소리가 가슴을 찌른다.
"전주시의회 의장이 영업시간 2시간도 못 줄여서 천막까지 친데? 꼴 사납다."
꼴사나운 전주시의회 의장! 꼴 사나운 짓 까지 하면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면 정치활동을 접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이를 악물고 천막생활을 이어가 재벌유통업체들의 가속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개인적 이유도 분명해졌다.
/ 조지훈 (전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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