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채 (남원문화원장)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마을을 통과하는 남원시 주천면 노치마을은 전국 유일의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4일 오전 11시 마을 주민의 화합, 무병장수 그리고 산악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례 행사가 거행되었다. 따뜻한 봄기운이 다가오는 매년 3월 초에 개최되어 왔던 행사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주민과 둘레길을 찾은 관광객·산악인 등 2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원문화원이 주최하고 노치마을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당산제라 함은 하나의 산신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당산은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同神), 산신(山神)을 모신 제례행사이다. 마을마다 고목(古木)을 신체로 하여 그 주변에 금줄을 쳐놓고 평소에도 부정을 금해왔다. 이 나무를 당목(堂木) 또는 도당목(都堂木)이라 한다. 산제당은 산이나 언덕에 당우(堂宇)를 짓고 대개 고목 밑에 자리잡아 보통 음력 정월달에 제사를 지내왔다.
제사는 엄격한 금기(禁忌)가 행하여져서 불결한 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제비(祭費)는 그간 마을 공동기금으로 충당, 제물을 구입하고 당산제를 올린 후에는 마을주민이 고루 제물을 나누어 먹는 전래풍습이 있어왔지만 농촌 인구가 급감하고 노령화됨에 따라 이러한 우리의 전래풍습마저 변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항상 어릴적 경험해왔던 세시풍속이 생각난다. 현대사회의 도시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예전 농촌사회에서는 큰 명절의 하나였던 정월대보름에 귀밝이술, 지신밟기, 놋다리 밟기 등 그 이름만으로도 재미있는 세시풍속들이 많았다. 최근 산불예방 대책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이 즐겨했던 쥐불놀이가 없어져 아쉽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세시풍속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옛날의 세시풍속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것은 아니다.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접목시켜 보자는 것이다.
국적도 알 수 없는 발렌타인데이와 값비싼 초콜릿에 물들어 있는 우리 젊은이들이 새롭고 화려한 것 대신 우리 고유의 명절에 관심을 갖고 그들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정월대보름을 사랑의 고백 날로 정해 호두·잣·땅콩 등을 선물하게 하면 어떨까. 또 정월보름과 당산제 때 차린 음식, 고사리·토란대·취나물·호박고지나물·시래기나물 등 묵은나물과 우리의 유기농 농산물로 지은 잡곡밥을 먹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내용의 당산제례 행사를 마을마다 확대 실행, 우리 민족의 전통민속 행사인 농경문화의 흥겨운 축제로 발굴(복원)하여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춤과 우리 가락의 풍물굿 등 우리의 놀이 문화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날 주천면 농악단원들은 식전행사로 마을 앞 바위에 둘러싸인 느티나무 할머니 당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물굿, 당산굿, 날당산굿 등을 통해 할아버지 당산에 이르기까지 관광객과 마을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풍물굿 한마당 잔치를 펼쳤다.
우리의 전래 민속문화인 각종 세시풍속과 당산제가 구시대의 유물로 천대시되어 온 바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되살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현대화된 문화로 창조,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전승·보존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이병채 (남원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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