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민 (농협 서울과학기술대지점장)
모처럼 내 고향 전주에서 훈훈한 소식이 들려와 기린봉을 타고 내려와 한벽루를 비치는 봄볕처럼 다사롭다. 인심 좋은 전주사람이란 말이 듣기 좋아 주위 사람들과 한참 수다를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얼굴 들기도 민망하였다.
올 초, 사람들이 새해를 맞아 희망찬 발걸음을 시작할 때 케냐(Kenya)에서 청운의 꿈을 갖고 전북대학교로 유학 온 토마스(Ragot Simon Thomas)는 죽음 보다 더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전북대 구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당한 뺑소니 교통사고로 두 다리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부어오르고 통증은 칼로 생살을 도려내는 듯 하였다. 뺑소니 사고라 보험혜택도 없어 치료는 엄두도 못 냈으니 그 뺑소니 운전사가 얼마나 미워겠는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집은 올해 같은 추위에 황소바람이 들어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연료 살 돈이 없어 보일러는 언제 가동해 봤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쌀은 커녕, 라면마저도 떨어져 허기지고 아픈 몸을 이끌고 경찰서에 출석, 조사를 받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고향 케냐에서는 동생이 사망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아내는 학비와 생활비 송금을 못해 포기하고 귀국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주 인심은 이런 유학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누구는 김치를, 누구는 쌀을 나누어 줬고, 어떤 교회에서는 용돈을 주었으며 몇몇 의사 선생님은 무료 치료를 자청하기도 했다. 이런 전주 인심에 토마스는 힘을 얻었고 전북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낙방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힘든 생활로 한국어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다.
문제는 어학원에서 한 학기를 더 공부할 등록금에 있었다. 학비가 없어 제때 등록하지 못하면 비자를 갱신 할 수 없고 그럴 경우 아무런 성과 없이 케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런 소식을 들은 외국인들이 나섰다. 캐나다인으로 전주가 좋아 7년째 살고 있다는 데이비드(David Van Minnen)씨를 중심으로 토마스를 돕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학비의 절반을 자신이 먼저 입금하고 나머지를 마련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모여 작은 콘서트를 수차례 열고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데이비드는 현재 '전주의 중심(www.thejeonjuhub.com)' 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외국인들이 그 사이트에 접속하여 정보를 얻고 있다. 토마스의 사정을 접한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이 기부금을 계좌로 송금하고 있고 이는 전주라는 공동체(community)가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끈끈한 지를 증명하고 있다.
최근, 토마스는 군산의 한 의사의 도움을 받아 3월 7일 끊어지고 찢어진 무릎과 다리 인대 수술을 성공리에 받았다. 계속되는 전주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아프리카 한 가정의 미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비록 피부색은 다르지만 공부를 마치고 성공한 토마스가 전주 사람들을 친형제로 생각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전주의 정(情)을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뺑소니 운전자에게 묻고 싶다. "전주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 한상민 (농협 서울과학기술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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