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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전북에는 '정치' 가 없다

이재규 (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일본 열도를 강타한 특급 재난 소식에 연일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전주 버스파업 100일을 맞았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100일처럼 설렘 속에서 하루하루를 세는 기쁨이 아니라 칼바람 치는 겨울 거리에서 목쉰 함성과 빈손으로 버틴 100일이기에 버스 노동자들의 심경은 정말 봄이 봄 같지 않을 것이다.

 

겨우내 이를 악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던 승객들의 분통을 따라 저잣거리 민심은 무서운 쓰나미처럼 번져갔다. 버스나 택시 안, 술집에서 만난 보통시민들은 노사는 물론 지역 정치권을 향해 원색적인 욕설을 털어놓았다. 80일, 100일이 되도록 버스파업 하나 해결 못하는 지역 역량에 부글부글 끓는 마음들이 그렇게 분출한 것이다.

 

물론 법원의 교섭권 인정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불법파업 규정이 서로 충돌하면서 노사간 장기대치의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행정이 이 양 측 논거의 사이에 끼어 운신할 폭이 좁다는 말에도 일부 수긍할 점이 있다. 정동영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태도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청문회도 준비한다고 한다. 민주당 시장, 도지사에 유력 정치인이 다 같은 당인 텃밭에서 일어난 노동문제를 여야 대결구도로 희석시키면서 빠져나가나 싶지만 일단 경청해보자.

 

그러나 청문회를 연다면 시민들이 가장 먼저 말을 듣고 싶은 사람 1순위는 정 의원의 표현처럼 '무리한 버티기'를 하고 있는 사업주들이다. 세간의 이야기처럼 도대체 어떤 '빽'이 있길래 그 많은 버스보조금을 그렇게 허술한 절차를 거쳐 편하게 갖다 쓸 수 있는지, 막강한 행정권한을 가진 단체장들의 '중재'와 설득을 쉽게 뭉갤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국과 지역에서 파트너 당을 바꿔가면서 이른바 정책연대와 선거 캠프 참여를 통해 유력 정당, 단체장과 정치적 특수관계를 맺어온 일부 노동 관계자들도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다.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고 수구세력 집권 연장을 막아야 한다는 열망 때문에 진정한 검증과 경쟁 없이 오래 편안하게 정치적 독점의 과실을 누려온 전북의 정치권 유력인사들도 말문을 열어야 한다. 이른바 토호들과 특정한 학연과 지연, 이해관계로 얽혀서 후견, 지원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을 제때에 반박할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파업 80일을 맞아 버스 승강장에서의 1인 시민시위를 제안한 것은 그것이 노사협상 타결을 위한 무슨 힘있는 사회적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버스를 기다리는 교통약자의 마음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단체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에 정말 아쉬웠던 것도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 소통을 만들어내려는 절박한 호소의 부족이었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버리고 속수무책의 진영 대결만 남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목소리라도 내보자는 것이었다.

 

파업이 나날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 측에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았다. 시민의 눈높이를 고려한 유연성을 주문하고 싶었다. 오거리 촛불집회에서 이제 노동자가 통큰 결단으로 먼저 파업을 풀어주고 시민들의 지지 속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 어떻겠느냐는 마음 아픈 제안도 했었다. 곧바로 일부 노동자의 항의성 발언도 들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전북대 승강장 앞을 지나가던 파업시위 행렬 중 한 분이 피켓을 들고 선 내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꺼낸 홍삼즙 한 봉을 내밀었다. 추운데 드세요. 아니, 먼저 드셔야…. 서로의 입장을 넘어 건네진 그 작은 소통이 못내 안타까워 난 아직 음료팩을 뜯지 못하고 있다. 버스는 여전히 파업중이다.

 

/ 이재규 (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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