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엽(국회의원)
2010년 말. 필자는 고성과 몸싸움이 난무하는 저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왕이면 멜로드라마나 정치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본인의 의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캐스팅이었다. 단 한번의 NG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들이 왠지 익숙하게 다가왔다.
현장에서 난투극의 생생한 와중에 있었던 필자는 왜 이런 악습과 폐단이 계속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대 국회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국회다. 1948년 개원 후 이순(耳順)이 되는 해에 구성되는 국회, 여당과 야당이 서로 정권을 주고받은 후 처음으로 구성되는 국회다. 그래서 국민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기대했고, 보다 성숙된 정치환경이 조성될 것을 성원했다. 18대 초선의원으로서 필자의 다짐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한 국민적 열망과 개인적 다짐을 지켜내지 못했다.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국회의원은 왜 싸우는가?'. 간혹 국회를 방문하는 초등학생들이 스쳐지나가듯 묻곤 한다. 순간 필자는 나를 조롱하는 말이 아닐까하며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지역감정'과 '나눠 먹기식 하향식 공천'일 것이다. 당론에 따르지 않으면 공천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현행 정당공천 방식이 국회의원을 격투기 선수로 만드는 토양이 된 것이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지역구도의 선거양태는 국회의원이 몸을 던져 싸워야만 하는 동기부여로 작용한 것이다.
국회 곳곳에서는 다음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려 애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안쓰러운 현실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민을 위해 활동하기 보다 공천권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정치가 발전하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개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당의 지역구도와 의회독재를 제어할 수 있는 석패율제, 필리버스터(filibuster) 도입 등도 언급된다.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논의가 논의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 정치발전을 선도할 명쾌한 제도적 정비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이 되는 공천방식을 유권자의 뜻에 순응하는 상향식 공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발전의 요체이고, 선진 정당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당원과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당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복'을 새롭게 도입하는 것도 체면과 체통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법관이 법복을 입음으로써 스스로 공정성을 다짐하듯, 제어하고, 절제하며 자중할 수 있는, 또 한편으로 국민들께 떳떳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스마트해지고 있다. 그만큼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적 수요도 다양해지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필자도 SNS를 사용하면서 각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청취하고 있고, 또 이를 바로바로 의정활동에 반영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국민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희망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는 과감히 제도를 뜯어 고쳐서, 또 국민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참여함으로써 잘못된 정치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 발전된 기술도 이를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줄 것이다. 이제는 막장 저질 드라마가 아닌, 시청자에게 호감과 재미를 선사해 줄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될 날을 기다려 본다.
/ 유성엽(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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