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상 (전주지방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 위원장)
전주 시내버스 파업이 140여일만에 노사 양측의 극적인 합의로 타결이 되었다.
우리는 막 나가는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에이 모르겠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 데 원래 이 말은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사찰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승가 내부도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으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되었다. 즉 깊은 산중에서 경전공부와 참선공부를 통해서 부처님의 진리를 깨우치려는 승려들은 이판승이 되고 속세의 현실에 맞춰 이판승들을 외호(外護)하고 나아가 절 살림을 맡아 지킬 스님들이 필요했다. 이들이 사판승들이다.
이들 사판승들은 숭유억불 정책의 시대에 저자에 나아가 탁발을 하며 때론 선비들에게 얻어 맞거나 관가에 고발당해 고초를 겪는 등 갖은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사판승들의 눈물어린 노고에 의해 절의 살림이 유지될 수 있었으며, 깊은 산중에서 참선과 경전 공부를 하는 이판승들이 있었기에 불교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이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수레의 양바퀴와 같아 어느 한쪽도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학식과 인품을 갖춘 이판승들에 비해 사판승들은 상대적으로 배움이 적고 하열(下劣)하였다.
그래서 사중(寺中에)서는 이 양측의 대립이 심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사찰에 중요한 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전 대중이 모여 논의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중공사(大衆供辭)또는 대방공사(大房供辭)다. 이것을 줄여 불러 공사판(供辭判)이라고 한다.
이판과 사판이 한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대책을 세우고 앞일을 설계하는 자리가 바로 이판사판, 공사판이란 말이다.
또한 절에는 대중이 모여 살기 때문에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차례대로 하게 되는데 이것이 차서다. 위와 아래가 정해지면 윗자리를 상판(上判), 아랫자리를 하판(下判)이라 부른다.
즉 판(判)이란 일정한 대중이 모여 있는 자리를 말한다. 필자는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단체활동을 하면서 각 종교단체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동안 잘못 알았던 이판사판, 공사판에 대한 내용을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자세히 알게되었다.
필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84세 되신 전직 교장 선생님은 퇴직 후 공기 좋은 곳에 사신다고 완주 봉동으로 이사 가셨는데 이 분은 특별히 바쁜 일이 아니면 15km거리인 전주까지 걸어오시고 또 걸어가신다.
아무리 무더운 한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정장 차림이다. 오늘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고 궁금해서 여쭤보면 전주시청까지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되었다고 하시는데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는 전주까지 도저히 걸어오지 못하겠다며, 버스 파업으로 무척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은 자가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내버스 파업에 대한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약자인 노인·학생들, 그리고 농촌에 사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비록 버스파업은 타결이 되었지만 앞으로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불교인들의 지혜로움을 토대로 노·사·관이 얼굴을 맞대고 공사판을 벌여 진정 시민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슬기롭게 대처하길 바란다.
/ 서주상 (전주지방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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