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찬 한드미마을대표
"잘 사는 마을을 만들어보겠다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발전동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10년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지요. 너무 도시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기니까요."
정문찬(53) 한드미마을대표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40대 초반이었다. 마을엔 60대 이상만 있었고, 길은 좁아 버스도 들어오지 못했다. 살기 편리하고 쾌적한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 잘 사는 마을도 그의 꿈이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3명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젊은 사람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교육환경이 문제였습니다. 학교 지키기에 나선 것이 이 때문입니다."
정 대표는 초등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후 중학교와 농협이 문을 닫고, 파출소와 면사무소가 출장소로 전락하는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폐교가 마을쇠락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농촌유학으로 학교를 지킨 한드미마을은 10년새 단양군 인구가 6만에서 3만명으로 절반이 되는 동안 거꾸로 늘어났다. "농촌과 교육은 경제논리로 따져서는 안됩니다. 지속가능한 농촌, 돌아오는 농촌을 위해서는 '무조건'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한드미마을이 마을가꾸기나 공동체회사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도 학교를 지켰기 때문이라며, 학교가 존속하면서 젊은이들이 마을에 왔고, 이들이 동력이 돼 새로운 사업이 기획되고 진행되면서 마을에 활기가 더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할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유학센터를 다녀간 학생들도 모두 한드미의 자원이 됐다고.
정 대표는 앞으로는 가공산업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농업과 농촌도 스스로 산업화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는 장기적인 발전동력을 갖출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드미마을을 전국적으로 알린 한드미막걸리가 자원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농산물이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한드미마을 공동체 성공 비결은 특별한 자원이나 외부 지원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 이들의 의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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