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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데

이세재(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아파트 위층에서 쿵탕거리는 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내는 소리며, 누가 듣는가에 따라서는 하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던 시절, 17평으로 기억하는데 위층이 식당을 하는 집이어서 밤이면 12시가 넘을 때까지 마늘을 찧어대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영세 식당을 운영하는 집이라는 걸 알고서는 투정 한번 부려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꼬박 4년인가를 살고 나왔는데 우리가 이사하자마자 그 집도 이사를 갔다고 해서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두 번째 살던 아파트에서는 위층에서 새벽이면 가끔씩 부부싸움하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부부 중 누군가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술에 취한 날이면 꼭 새벽마다 살림살이가 부서지는 것이었다. 한 번은 아이의 수능시험 보는 날 새벽인데 잠을 깨우는 싸움 소리에 울화가 치밀어 쫓아 올라가 주먹다짐을 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고요한 새벽을 흔들며 위층 방바닥을 구르는 냄비뚜껑 소리에 오히려 낄낄낄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사람 사는 게 참 요란하기도 하구나 하고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15년을 훌쩍 넘기고 나니 서민아파트의 새벽이 오히려 정겨워졌었다.

 

얼마 전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서민들과 함께 사는 어느 원로 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그 분이 마침 아파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위층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날 이후로 가끔씩 콩콩콩…… 콩콩이를 타는 소리가 났다. 짐작에 서너 살 먹은 꼬맹이가 콩콩이를 타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이건 저녁이건 시도 때도 없이 콩콩콩……그 콩콩 소리를 들으며 그걸 타는 티 없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였으며, 어떤 때는 자신도 콩콩이를 타며 그 아이와 함께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느덧 그 소리를 들으며 산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미안해 할까봐 그동안 한 번도 그 아이를 찾거나 만나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며칠간 그 콩콩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혹시 이 애가 아픈 건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걱정이 무르익어 확인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이면 또 어김없이 콩콩거렸다. 참 신기한 기쁨도 있구나, 참 이해 못할 안도의 순간도 오는구나,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위층의 소리 때문에 새벽잠을 깨거나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적이 없다. 모두가 생활형편이 나아져서 잡음이 날 일이 없는 것인지, 건물의 방음이 잘 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소란한 소리가 없다. 오히려 새벽이면 스스로 잠이 깨어 창밖으로 안개 자욱한 전주천의 적막을 바라보며 괜스레 쓸쓸해질 때가 많다. 차라리 적당한 사연으로 소리소리 지르며 누군가 싸워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이 아름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슬픈 추억은 영롱한 별처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적신다. 풍요를 지향하는 삶이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빈곤의 시대에 존재한다는 역설 속에 삶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천문학적 유산을 남기고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사실은 가난했던 시절처럼 절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 드문 요즘 공부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 속담이 자꾸만 생각난다.

 

/ 이세재(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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