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외고 2년
어느 날 우연히 국제발효식품엑스포 B2B통역요원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했는데 다행히 합격, 통역요원으로 참여했다. 내가 맡은 바이어는 중국에서 3,000여개의 4성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보유한 협회의 회장이었다. 큰 손님이어서 부담스러웠고, 자칫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포기할까 했지만, 10명의 통역 중 한국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 뿐이어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맡은 바이어의 관심 상품 정보와 비즈니스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바이어가 만날 기업체의 주요 상품과 영양 성분 등을 외워 나갔다.
행사 전날 밤, 나는 우연히 내가 담당하는 중국인 바이어들이 묶는 전주 모호텔에 중국어 통역이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들이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호텔에 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바이어들은 저녁식사도 못한 채 호텔 룸에 머물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중국 바이어들이 묶고 있는 객실에 일일이 전화를 해 저녁식사 장소를 안내하고, 식사 후 다시 호텔로 안내했다.
행사 당일. 나는 전날 저녁에 인사를 나눈 나의 바이어분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긴장을 했지만 바이어분들의 자상함에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가끔 모르는 단어를 찾느라 진행이 매끄럽지 못할 때도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 말을 어찌 그리 잘 하냐”며 격려해 주어 나는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교육 받은 대로 밀착 통역을 했다. 회의가 일찍 끝나거나 쉬는 시간에는 다음 회의 브리핑을 준비하거나 부스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몇몇 통역 요원들은 담당 바이어분을 혼자 있게 해서 불평을 사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이 각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제행사에 참여하는 기업이라면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커야하고, 또 친절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기업 관계자들은 퉁명스럽게 중국에서 뭐하냐고 물어 내 바이어는 물론 나도 기분이 상했다. 내가 “3000여개의 호텔과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계신다”고 소개했더니 곧바로 태도가 바뀌기도 했다. 또 비싼 상품에 대해 바이어가 “이 가격이라면 중국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하자 “우리의 주 고객층은 상류층이 될 것이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 바이어 분이 격앙된 어조로 “좋은 물건은 하류층도 쓸 권리가 있다”며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충고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이번 행사를 열심히 준비하신 분들의 노고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글도 필요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통역 요원을 통해 바이어들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우리가 초대한 손님에게 다소 무례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그분들의 지갑에 많은 인민폐가 있었지만 얼마나 쓰고 갔을지도 의문이다. 부스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같은 것 밖에 없다며 그냥 나가자고 말할 땐 너무 안타까웠다. 그분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는 발효식품을 개발, 전시해야하지 않을까? 많은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국제발효식품엑스포. 그 큰 그림에 점 하나 찍은 여고생이 감히 여쭙는다. 과연 충분한 준비가 되었었는가?
어린 너로 인해 오늘 하루 행복했고 많은 걸 얻어 가신다는 바이어 아저씨 말씀. 보람과 서운함에 눈물이 났다. 내년에도 발효식품엑스포를 찾아주시면 더욱 더 성숙된 모습으로 기꺼이 통역을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늦은 밤 학교기숙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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