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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산비탈에 서서

▲ 선기현 전북예총연합회장
풍남문 돌아서서 저만치 오시는 전주 처녀, 개나리 저고리에 진달래 치마에는 하얀 코배기 고무신이 제격인 시절이 있다. 청춘 남녀가 단 둘이 만나 정담을 나누기 어렵던 그 시절에 공원은 적재 적소였다.

 

연애하러 가는 막내고모, 손목 잡혀 오르내리던 비탈길에 서 본다. 왼쪽 어깨에 노란색 완장 두른 다가공원 터줏대감, 사진박는 박씨 아저씨는 직업이 둘이었는데, 또 하나는 만화경 대여다.

 

찰칵하고 방아 틀 돌아가면 바뀌는 장면이 세상이 뒤집어지고 업어지던 그야말로 만화경 속 기억 저편으로 가 본다.

 

천양 정, 과녁 만나러 버들잎 꿰 차고 시위 떠난 화살 소리에 떡갈나무가지 떨고, “쿵” 하고 랑데부 하니 수 삼백년 족히 넘는 산신령 느티나무 지팡이가 추임새를 갖춘다. 다가산을 중심에 두고, 오른 쪽으로 용머리 고개 너머 이어지는 완산 칠봉, 봉우리, 봉우리, 어깨를 들썩이고, 왼쪽으로 뿌리 깊은 배움의 터를 지나 능선따라 태극산 끝자락에 전주의 북쪽을 책임진다는 진북사가 자리한다.

 

처마 끝, 풍경 소리가. 사바세계 넘나드는 비구니 목탁소리 장단 맞춰 맛있게 비벼진다. 앞으로는 기린 봉 중바위 사이, 올라오는 달덩어리, 온 동네 구석구석 환하게 비춰가며, 전주의 힘을 쏟아낸다. 뒤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천수를 다해 주는 화타들이 모여 살며 전주의 힘 받아 태어나는 힘찬 아기들 울음소리에 삼신할매 입가에 고운 여울이 인다.

 

만화경에서 깨어, 다가산 정상에 올라 본다. 서쪽하늘 중턱에는 낮달이 걸려있고, 매점 자리에는 긴 벤치가 누워있다. 그 뒤, 아카시아 나무 등허리에 비닐 봉투 뒤집어 쓴 사계절용 둥근 시계가 여섯시 이십 이분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지........,

 

아마, 수개월 째 그렇게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그대로 있는 또 하나가 있다.

 

 

시름

 

그대로 괴로움 숨지고 이어가랴 하니

 

좁은 가슴 안에 나날이 돋는 시름

 

회도는 실꾸리 같이 감기기만 하여라

 

아-아- 슬프단 말, 차라리 말을 마라

 

물도 아니고 돌도 또한 아닌 몸이

 

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

 

쌀쌀한 되바람이 이따금 불어온다

 

실낱 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든다

 

친구들 외로이 앉아 못내 초조해진다

 

<가람 이병기 시중에서>

 

이렇게 가람 시비는 멈춰진 시계를 곁으로 하고 시름에 웅크리고 있다. 그 시절에 쓰인 의도는 다를진데, 지금 같아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얼마 전 몇 분 지역 어른들과 같이하는 점심 자리에서, 한 분이 말씀 하신다.

 

“다가산의 사계절을 올라가 보았는가. 봄 여름은 수목에 우거져 전주의 풍광을 볼 수가 없고, 가을 겨울은 그리 을씨년스러울 수가 없다”고 그러신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중심에 침을 꼿고, 먹줄을 튕겨 나간다. 전주의 중심의 축은 다가산인데….

 

인구가 줄어들고, 구도심이 잠들어 가는 이 시기에, 명산 다가산에 힘을 불어 넣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느 풍수가 그랬듯이 어린애들이 모여들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곳이 최고의 명당이라 했다. 사유지, 시유지를 떠나 우리 지역, 흐림과 맑음, 삶의 문화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 온 다가산을 찾아가 껴안아 보자. 아이들이 사계절 뛰놀던 그 때 그 공원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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