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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나요?

▲ 이태현 수필가·임실군애향운동본부장

임실군민들의 억장이 또 무너지려나 봅니다. 지난 8일 강완묵 군수가 법원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이럴 때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나요?

 

끈질기게 1년을 끌어온 재판이기에 살아 돌아올 줄 알았는데 상처투성이로 목숨만 겨우 부지한 셈입니다. 일부에서는 전쟁에 함께 나간 병사들은 다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는데 장군 혼자만 겨우 살아온 꼴이라고 비아냥댑니다. 재판 결과를 몇 시간 앞두고 지상파 방송국 사진기자들이 임실에 미리 내려와 주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틀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머릿기사로 방송을 해 잊혀질만한 역대 군수들의 흠집이 또 불거지고 상기시키기도 했습니다. 역대 민선군수들이 죽을 맛일 겁니다.

 

필자인 저도 동아일보와 전북일보사가 제휴한 채널A라는 신설방송국에서 후배기자들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요청해 쓴 소리를 남겼습니다. 다른 방송과 신문에서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주민들 모두 마찬가지로 역대군수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어디 가서 고향이 임실이라는 대답을 못하겠다고 답변들을 하고 있었으니 허탈함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오죽해야 이제는 관선군수를 받아야 할 것 아니냐는 악담까지 나옵니다. 게다가 재판 하루 전에 군의회 의장이 지병으로 1년 남짓 투병하다가 타계하자 임실군은 하루 만에 쌍초상이 난 셈입니다.

 

이 기회에 역대 임실군수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관선에서 민선군수로 바뀌면서 4명의 원님(?)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니까 15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시군은 두 명이나 세 명에 불과한 민선 5기 동안 무려 5명이 나눠먹지 않겠느냐는 예측입니다. 인물이 많은 탓이라고 변명도 해 봅니다.

 

민선 군수부터 거슬러 올라가보면 초대가 고 홍재표 군수(1949년도 1년 역임 성수면 양지리)이고, 이후 임실읍 이도리 출신 23대 이상칠 군수(전주시 거주)가 1977년도에 부임해와 1년 5개월 근무했더군요. 그 후 29대 김만종 군수(임실읍 장재리)가 1년을 근무하고 전주로 간 후 지금까지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또 35대 이철규 군수(임실읍 금성리)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관선 마지막 군수로 1년 6개월 근무하다가 퇴직했는데, 민선 3대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의 영광을 안으면서 최초로 민·관 통합군수의 영예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이철규 군수는 그 후 4대 민선군수에 당선됐지만 그 분 역시 2004년 2월 3일 불미스런 일로 중도 하차 했고, 고향을 등진 채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면 풀뿌리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1995년 7월 1일자로 이형로씨가 민선 1기 통합 38대와 39대를 잇는 재선의 군수가 돼 근무하다가 불미스런 일로 재선 2년9개월만에 하차했습니다.

 

민선 5대(통합 42·43대)에 김진억 군수(삼계면 후천리)가 보궐선거에 뛰어들어 2년 1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김군수 역시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돼 재임 3년 6개월 만인 2010년 1월 13일자로 영어의 몸이 돼 추운 골방에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임실군수를 지낸 인사 중 다섯 분이 생존해 있으나 고향에서 얼굴을 보기가 힘듭니다. 가끔 이형로 군수를 각종 선거나 애경사에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역대 어른군수들을 고향에서 날마다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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