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인적 입장에서는 절약을 통해 저축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지나친 절약이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키고 종국에는 경제 전체의 부(富)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설이 현재 물값(수돗물값)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환경전망 2050' 물챕터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물값이 OECD 회원국 중 거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상하수도 시설 개선에 필요한 재원확보, 물의 효율적 사용 유도 등을 위한 물값 정책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 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 운행을 줄이고 자전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물은 어떠한가? 물값 때문에 설거지를 몰아서 하고 샤워 횟수를 줄여야겠다는 가정이 있을까? 누구나 알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데에는 물값이 매우 싸고 '물은 반공짜'라는 국민정서 때문일 게다.
현재 K-water가 광역상수도를 통하여 전북지역 11개 시·군은 물론 전국 시군에 공급하는 정수된 수돗물 1㎥(통상 1톤)의 가격은 394원이며, 이를 생수병 단위로 환산하면 500㎖ 2천병 분량이나 가격은 시중생수 한 병, 자판기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된다. 이 수돗물 값이 2005년 이후 7년째 동결된 상태이다 보니 2011년도의 수돗물 원가 현실화율이 79.7%에 그치고 있다. 이는 1만원 어치의 수돗물을 공급할 경우 도리어 2천원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다른 공공요금과 비교해도 너무나 싸다.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08년 기준, 가구당 월평균 수도요금 지출액은 1만1429원으로 전기요금 4만4416원의 1/4, 대중교통비 5만6315원의 1/5 수준이다. 통신요금 13만1500원에 비해서는 무려 11배나 저렴하다. 승용차로 서울 한 번 다녀오려면 고속도로 통행료만 해도 2만9000원이다.
최종소비자의 입장에서야 물 값이 싸면 쌀수록 좋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저렴한 물 값으로 인해 물을 '물 쓰듯'하는 소비행태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이 전기를 주로 사용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상품으로서 '유한한 자원'임과 동시에 '희소한 경제재'라는 사실이 간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품질의 물 공급은 판매가격이 생산비용을 충분히 보상하여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수도요금의 상승 억제 또는 동결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지출부담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원가 이하의 요금설정으로 경제적 효율성이 왜곡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 과소비 조장 및 국가·지방경제의 부채 증가 등과 같은 부작용을 낳고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수자원 공급을 위해 물과 물 관련서비스에 적정가격을 부과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를 제도적으로 줄여 나가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이다.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의 저렴한 물값은 오히려 잠재된 위험임을 인식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인상반대 보다는 모두를 위한 합리적 선택 차원에서 물값 현실화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오는 22일은 UN이 정한 제20회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이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물값과 물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물을 귀하게 대접하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