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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항 前 국회의원 "국회의원은 큰 일 하라고 유권자들이 뽑아준 겁니다"

여권과 협력할 것은 협력해서 전북에 큰 이벤트 만들어야…새만금에 농지·산업용지 조성보다 문화 접목이 바람직

▲ 손주항 前 국회의원이 군부통치시대에 민주투쟁의 길을 걸어 온 동기와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군부통치시대에 민주투쟁의 길을 걸어 온 소신있는 정치인으로서,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향해 당당히 그리고 거침없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국회의원 손주항(孫周恒·79). 그는 39세에 무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옥중 당선의 기적과 전국 최고 득표를 기록하면서 3선 의원으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하지만 불의와 타협하거나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강단(剛斷)과 결기로 인해 수차례 투옥과 정치규제를 당하는 질고의 세월을 감내해야만 했다. 거침없는 독설, 반골 정치인으로 유명한 손주항 전 의원(79)을 서울 종로구 대우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2002년 도지사 출마 때 보고 처음 뵙습니다. 지금도 강건한 모습이신데 건강 비법은.

 

"남자는 부인이 먼저 가면 절대 안됩디다. 4년전 사별했는데 벼슬 떨어진 것보다 더 안 좋아요. 매일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서 연희초등학교 운동장을 10바퀴씩 돌아요. 한시간 정도 걸리나. 다른 특별한 건강비법은 없어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임실군수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었는데…

 

"전임 군수 3명이 줄줄이 사법처리 되다보니 주위에서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며 권유했었죠. 하지만 임실 바닥민심이 안 변했고 의리나 정의나 인간적인 것도 다 없어져서…"

 

 

-임실이 고향이신데 전임 군수 3명에 이어 현직 군수도 군수직 상실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민선이후 단체장 4명이 사법처리된 전례가 드믄데…

 

"고향만 생각하면 참 안타깝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임순남으로 묶였다가 완주로 붙었다가 다시 진무장과 합쳤는데 이게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양재(養材)를 안했죠. 쓸만한 사람을 안키웠어요."

 

 

-50여년을 정계에 몸담으셨는데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됐습니까.

 

"그 당시 자유당 행패가 심해서 20대 초반에 민주당에 들어갔죠. 지구당 부위원장, 도당 선전부장을 했어요. 당시 도당위원장인 이철승씨를 비롯해 주위에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며 출마를 권유했었죠. 그래서 26살에 3대 도의원 선거에 나서서 당선됐습니다."

 

 

-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주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했었죠.

 

"당시 민주당 총재가 유진산씨 인데 나를 견제하느라 공천을 안 주는 거예요. 그래서 무소속으로 나갔는데 나하고 양해준씨가 되고 도지사를 지낸 현직의원이자 공화당 후보였던 이정우씨가 떨어졌어요. 당시 공화당 후보가 낙선한 것은 전국에서 단 2명뿐이었으니 엄청난 사건이었죠."

 

 

-당시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을 향해 3선개헌 중단 등 비판의 칼날을 세웠우셨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박대통령이 시책을 반대하면 때려는 잡아도 치사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국회 발언에 들어가면 녹취를 하고 내 주위를 도청도 하고 했지만 박대통령이 그랬데요, '왜 공화당에는 손주항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했다는 거예요."

 

 

-대법원장 비위문제를 국회에서 터뜨려 큰 이슈가 된 적도 있었죠.

 

"당시 민복기씨가 대법장이었는데 충남 청양에 있는 땅 100만여평을 농민들로부터 수탈한거예요. 이 문제를 국회에서 10차례이상 질의했죠. 결국 그 땅을 농민들에게 돌려주었죠. 나중에 10대 국회의원 선거기간중 청양 농민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임실까지 찾아와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10대 총선때는 유세도중에 전격 구속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지만 옥중당선의 영예를 안으셨죠.

 

"당시 긴급조치 9호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순창 합동연설회 도중에 긴급 구속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검찰총장출신 대법원장을 비판한 결과였죠. 나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원 등 100여명이 모두 잡혀갔어요. 그래서 안식구와 운전기사 둘이서 내 사진을 짊어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개표하는 날 전주교도소 안에서 갑자기 와~ 만세 하면서 웬 함성이 들리는거예요. 난리가 났죠. 교도관이 내가 당선됐다고 알려줘서 알게됐죠. 당시 옥중 당선자가 전남 고흥 보성서 출마한 김수 후보와 2명이었는데 그 양반은 나중에 공화당에 입당했어요."

 

 

-달력 국회의원이란 별명도 있었는데 달력은 얼마나 돌렸습니까.

 

"그 때는 한 장짜리를 벽에 붙이도록 만들었는데, 한 10년이상 돌렸죠.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됩디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군부정권 타도를 외쳤다가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1년간 교도소에 있다가 박대통령이 저격 당한뒤 풀려났는데(나중에 대법원서 긴급조치위반 등 혐의 무죄선고) 다시 광주내란음모 배후인물로 해서 구속되었습니다. 이후 선거권 피선거권 등을 모두 박탈당하고 10년간 식물정치인으로 지냈죠. 나중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됐지만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으로는 미흡했지…"

 

 

-정치 규제로 묶였다가 13대 총선에선 평민당 후보로 전주에서 출마해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를 꺾고 3선고지에 오르셨죠.

 

"당시 전국 최다득표를 했습니다. 이철승 전 총재는 3등을 해서 결국 정계를 떠났죠."

 

 

-5공 비리 청문회하면 지금도 거침없는 직접화법으로 시시비비를 추궁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DJ가 나보고 5공비리 특위위원장을 맡아 제일 먼저 질의에 나서라고 해서 먼저 발언했습니다. 전두환씨가 상왕노릇하려고 만든 일해재단을 집중 파헤쳤죠. 앞장서서 강제모금 등을 추궁하는데 당에선 그들과 뒤에서 협상하고 딴 짓을 하면서 나를 견제하는 거예요."

 

 

-당시 증인으로 나온 현대 정주영회장에겐 독설가답지 않게 정중하게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죠.

 

"아, 그거 회장님 소리는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동해출신 의원이 한 소리인데 나를 정치적으로 죽이기 위해 음해한 것입니다. 다만 초선의원이었던 정몽준 의원이 아버지 증인 순서를 뒤에다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그렇게 해주었죠. 당시 정 회장이 음식점에서 수표 2장이라고 주길래 나는 작은 것 말고 현재 문화일보자리를 달라며 거절했습니다. 국악협회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 땅 주면 거기에 정회장 동상을 세우겠다고 제안했었죠."

 

 

-결국 김대중 총재와 결별하고 14대 총선에 다시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낙선의 아픔을 겪으셨고, 이후 김 전 대통령하고는 고소전으로까지 이어졌는데…

 

"내가 여러 차례 고소했죠. 국가보안법 위반 공천비리 뇌물수수 재산국외도피 외화밀반출 등 모두 7번 고소했는데 검찰에서 가만히 있다가 DJ가 죽고나니까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합디다."

 

 

-야당사의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간 이유는.

 

"DJ 때문에 갔죠. 그 일당이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갔습니다."

 

 

-그동안 전북과 호남에서 일당독주 문제를 많이 거론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DJ 향수에 젖어있습니다. 물리적이 아닌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야합니다. 이제 DJ 우산에서 벗어나 당당히 전북 몫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전북의 혼을 찾고 전북인의 기백과 기상과 기질을 되찾아야 합니다. 홀로서고 바로서야 전북이 살 수 있습니다."

 

 

-지난해 LH 문제도 그렇고 전라북도가 힘이 없다는 자조섞인 말이 많습니다. 누구 책임이라 보십니까.

 

"광주 박광태시장이나 전남 박준영지사는 다들 제몫을 챙기고 있습니다. 새만금만 가지고 얘기해서는 안돼요. 여수엑스포 같은 것은 군산에서 했어야 맞습니다. 군산항이 왜정때는 4대 항구중 하나였어요. 헌데 지금은 46개 항구중 꼴찌입니다. 여권과 협력할 것은 협력해서 전북에 큰 이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만금 말씀을 하셨는데 20년동안 겨우 방조제 하나 막고 너무 지지부진한 것 아닌가요.

 

"지금처럼 이렇게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중앙정부를 상대로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대담하게 나서야만 합니다. 이것저것 눈치보고 말 못해서는 일이 안돼요. 누가 앞으로 1년에 2조원씩이나 예산을 준답니까.

 

 

-그러면 전라북도와 새만금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새만금을 농지나 산업용지로 쓴다고 하는데 비싼 돈 들여서 그렇게 하면 아까워요. 새만금에 문화를 접목해서 나가야합니다. 지금은 문화시대이잖아요. 또 국가 땅인데 이것을 전북 것으로 못박고 새만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예향 전북이라고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 문화수도는 광주로 넘어갔잖아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광주를 문화1번지로 만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문화1번지는 전주입니다. 이조 500년 성지가 경기전이고 조선왕조 4대 사고의 유일본이 전주사고이잖습니까. 왜란때 정읍출신 안의·손한계 선생이 짊어지고 피란길에 올라 지켜낸 것입니다. 왕들만 들어가는 경기전 안에 두분을 기리는 비석이 지금도 남아있잖아요. 전주사고 원본을 전주로 가져와야만합니다. 또 전주에 전라감영이 있었고 남문이 호남제일성이었습니다. 일제 잔재인 풍남문, 풍남제 대신에 호남제일성을 쓰고 전라감영을 수원성 못지않게 복원해야 합니다."

 

 

-전북발전을 위해 지역의 리더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앞으로 문화 전북을 표방하는 도지사가 나와야합니다. 전북의 맛과 멋 가락과 소리, 즉 전북의 영혼을 창조해 나갈 리더가 필요합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전주에 대사습청과 국악대학원을 세우고 최고의 소리축제판을 벌여야합니다. 전국에 50~60명 되는 명창들만 모아서 대통령상을 걸고 소리왕을 뽑는 축제도 만들어야 합니다."

 

 

-전주대사습보존회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아 대한민국 최대 국악 등용문을 만드셨는데 최근 전주대사습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안타깝습니다. 우리 대사습이 300년 역사인데 일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없앴다가 90년만에 부활시켰잖아요. 헌데 지금 체육관에서 행사를 하고 있어요. 이사장도 국악인 대신에 대사습을 관리 계승 부흥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을 선임해야합니다. 소리가 전주의 큰 밑천인데 한옥마을이 문제가 아니죠. 전주의 한복판, 현재 예술회관 자리 같은데에 빨리 대사습청을 만들고 명실상부한 소리의 전당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19대 총선이 끝났습니다. 지역발전을 책임질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은.

 

"국회의원은 큰 일 하라고 뽑아준 겁니다. 하천 다리놓고 학교 체육관세우고 하는 것은 지방의원이 해야하는 일이죠. 중앙에서 교부금 조금씩 받아다가 생색내는 것 말고 큰 것을 잡아야합니다. 또 장관 차관이 무서워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합니다. 부산 대구 광주 의원들 봐요. 할 소리 다 하잖아요. 왜 전북만 오갈병이 들었습니까. 큰 소리 치려면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 머리 좋아서 고시패스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을 머리 숙이게 만들려면 공부 많이 해야하고 부지런히 노력해야합니다."

 

 

-독특한 서도 서예 서각을 일궈서 일명 손주항체라는 글씨체를 개척하셨는데 어떻게 배웠는가요.

 

"그게 손주항체가 아니고 설문체입니다. 옥편을 찾아보면 초서 행서 뒤에 설문체가 나오죠.(직접 옥편을 찾아 확인시켜주면서) 갑골문과 거의 같아서 조형미가 있고 아름답죠. 글씨는 어머님이 글을 잘 쓰셨는데 어릴 적에 저에게 매일 신문지 한 장씩을 주시면서 새까맣게 채우라는 거예요. 그게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은.

 

"전북도민들이 기가 죽어있습니다. 기를 살려야 합니다. 안된다 어렵다는 비관과 자조를 버리고 투지를 가져야 합니다. 전북이 죽느냐 사느냐는 도민들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조건 당만 보고 찍다보니 낙후되고 괄시받고 설움 받아온 것 아닙니까. 이제라도 인재·인물을 키워야합니다. 또 큰 생각 가지고 큰 판, 큰 이벤트를 벌어야 합니다."

▲ 손주항 前 국회의원과 본보 권순택 선임기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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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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