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5:18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북 시의 숨결을 찾아서
일반기사

21. 최종규(崔宗奎) 편 - 절대지향의 고독한 행보

▲ 최종규 시인
김제 출생 최종규(1938~) 시인은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4년 '현대문학(現代文學)'으로 등단하였다. 평생을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초설(初雪)'(1968)외 9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초기 그의 시는 생명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현대문명을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구원과 상실된 고향 의식 및 인간성의 회복이 시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난삽한 어법이나 트릭으로 위장되어 있지 않고 친근한 소재와 소박한 문체, 그리고 사물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정관적(靜觀的) 자세로 엮어져 있다.

 

나는

 

한 무리

 

극명(克明)한 가을 햇볕.

 

한 움큼의

 

차고 시원한

 

청정한 물.

 

숲에서 발산하는

 

신선한 한 줌의

 

맑은 바람.

 

혼탁한 열기(熱氣)

 

법석이는

 

저자거리 너머,

 

흔들리는 가지

 

반짝이는 잎새 위에

 

해맑은 한 떨기 푸르름.

 

짙푸름 끝에 너울대는

 

눈부신

 

한 줄기 빛의 이랑.

 

- '한 줄기 빛의 이랑' 전문

 

'햇볕- 물- 바람- 푸르름- 빛'으로 이어지는 시상은 한 마디로 만물제동, 곧 노장의 물화계에 다름이 아니다. 이 시야말로 '진실한 나의 자화상'이라고 한 최 시인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한 편의 시 속에서, 그가 얼마나 자연에 귀화(歸化)하여 그것들과 합일되기를 꿈꾸고 있는가 하는 그의 자연 지향적 정신세계의 정점을 엿보게 된다.

 

내 어릴 적 장독대엔

 

커다란 항아리가 많았습니다.

 

어떤 항아리 하나는 그냥 빈 채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을 보고 싶은 충동에

 

닿지 않은 키 늘리려고

 

깨금발 딛고 서서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혼자 조용히 들여보다가

 

휑하니 빈 것을 알고 나선

 

아하!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소리 되받아

 

항아리도 아아 ! 울렸습니다.

 

 

지금 텅 빈 그 항아리가 되어

 

내 속을 드려다 볼 누군가를

 

지금 것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 '빈 항아리'일부 2006

 

 

'삼라만상은 꽉 차 있으면서도 실은 빈 항아리처럼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우주는 곧 공(空)이요 태허(太虛)이다. 이 몸 또한 그와 다르지 않으니, 누군가 이러한 '내 안을 들여다보며/ 불러 줄 설렘을 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몸이 내가 아니고…… 생각이 내가 아니고…… 내 직책과 내 재산과, 내 명예, 내 감정, 곧 색신(色身)의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진정 나를 이끌어 가고 있는 보다 크고 거시적인 나. 그리하여 이 몸뚱어리, 지금의 이 생각과 느낌을 움직이고 있는 나의 참주인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