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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재미있는 이유

홍 현 종전주 JTV PD

지난 글에서 "역사상 최고의 소리꾼이 누구냐?"라는 자문에 권삼득이라고 답했는데, 그렇다면 "직접 공연을 통해서 만나본 소리꾼 중에서는 누가 최고였느냐?"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오정숙명창이라고 대답한다.

 

서울 출신인 내가 전주에 자리를 잡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깜짝 놀란 것 중에 하나가 판소리였다. TV에서만, 그것도 몇 번 본 기억도 없는 판소리를 전주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게 접해볼 수 있었다. 더욱이 판소리를 상설공연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어린 학생들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싶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색다른 경험에 끌리는 딱 그 시점에는 개인적 욕심에 이끌려 판소리 관련 다큐를 제작하기도 했었는데, 취재를 이유로 이곳저곳 공연을 찾아다니고, 전문가와 소리꾼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찾아보며 이해의 폭을 넓히려 하였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한자성어, 소리꾼과 고수가 전부라는 단순한 구성에서 오는 음악적 단조로운, 시대와 동떨어진 내용에서 오는 진부함,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공연형태.

 

결론은 어렵고 진부하며, 재미없는 음악. 이것이 판소리였다. 그런 내게 '판소리도 재미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가 등장하였으니, 바로 오정숙이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초대 장원(1975년)이자,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부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였던 오정숙.

 

물론 판소리를 잘 한다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거명되고 있지만 오정숙처럼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오정숙은 정확한 발음, 능숙한 연기, 탁월한 해석능력, 강력한 카리스마,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오정숙을 높이 사는 이유는 정말로 정확한 '발음'과 '연기력'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판소리의 사설이 원래부터 어려운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소리꾼들의 변명처럼 들리고는 했는데, 판소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지 매 공연 본보기처럼 보여준 사람 오정숙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판소리는 음악이기 이전에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해주던 옛날이야기다. 춘향가가 그렇고 심청가가 그렇고 흥부가가 그렇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과 이야기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많이 아는 것은 별 연관이 없듯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이야기 전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 소리꾼은 음악인이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다. 그런 점에서 오정숙의 능력은 정말로 탁월하다. 단 한사람의 소리꾼이 무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판소리만의 음악적 특징일진데, 이 소리꾼은 흥부가 됐다 놀부가 됐다 춘향이와 이몽룡과 방자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마치 서양의 오페라를 혼자서 연기하는 격이다. 오정숙은 특히 춘향가를 즐겨 불렀는데 어사출두 후 "어제 저녁 오셨을 제 어사한줄은 알았으나"라며 춘향모가 신바람나서 휘젓고 나오는 대목은 앉아있던 관객들을 일어나게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쳐난다. 오정숙의 소리에는 이야기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연기력을 무시하고 득음이라는 경지에만 집착하는 소리꾼들이 대부분일진데,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당대 최고의 성음을 가진 오정숙을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정숙은 진정한 명창이다!

 

지난 2008년 7월 7일 명창 오정숙은 영면하였다. 그의 부재로 인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의 상실은 물론, 수많은 제자들이 거쳐 갔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위치한 동초각의 문화사적 가치도, 김연수로부터 오정숙으로 이어졌던 동초제 소리의 전통도 그 뜻을 잃어가고 있으니, 소리의 본고장이라는 우리 지역에서 오정숙과 판소리를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과 애정이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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