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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윤이현(尹伊鉉)편】무위 자연의 천진과 자발적 직관의 동심

▲ 윤이현 시인
"톡-"

 

튕겨보고 싶은

 

"죽-"

 

그어보고 싶은

 

"와-"

 

외쳐보고 싶은

 

"풍-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하늘.

 

- '가을 하늘 2' 전문, 1987

 

가을 하늘을 한 번 '톡 / 튕겨보고' 또 '죽-/ 그어보고 싶은' 어린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 그것은 곧 '해 보고 싶은' 생명감의 분출이요 인간 본성의 욕망이다. 그 어떤 체면과 이데올로기도 없는, 인간 본성의 자발적 감성에 충실한 생명감의 발로, 그것은 인간 그 자체의 본성에서 기인한 극히 자연스럽고 천진한 동심과 순수의 낭만적 세계가 아닌가 한다.

 

어머

 

나비는 꽃잎

 

나래 접으면 한 잎

 

나래 펴면 두 잎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뿐사뿐 날아 앉는

 

노오란 꽃잎 두 장

 

- '노랑 나비 한 마리' 전문, 2003

 

'나비'를 '꽃잎'으로 보다니..., 어떤 관념이나 이념이 제거된 순수 직관의 영지, 그가 지향하는 호기심의 세계를 어떤 지식이나 추상이 아닌 구체적 사실(fact)로서 전달하고 있다. 그것도 간결·명료한 이미지로써 일체의 설명을 배제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된 '가을 하늘'과 '노랑나비'가 그것인데, 그의 시가 이처럼 산뜻하고 간결한 데에는 아마도 한학자였던 조부와 부친의 슬하에서 일찍이 체득된 한시풍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새벽 두 시

 

어둠은 가로등에게 맡기고

 

길도 길게 누워 잠이 들었나 봐요.

 

[…]

 

한 여름 긴긴 해

 

짓누르던 피곤을 내려놓고

 

곤히 잠드신 아버지처럼

 

저 길도

 

잠을 좀 자야겠지요.

 

- '길도 잠을 좀 자야겠지요' 일부

 

'새벽 두시'는 깊은 밤이다. 그때까지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잠이 들지 못했나 보다. 이런 '골목길'의 노고를 그 옆에 서 있던 '가로등'이 염려하고 있다. '이제 그만 눈이라도 좀 부쳐보라며' 가로등이 대신 밤길을 지키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염려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종장에 가서 시상이 반전된다. 마치 '한 여름 긴긴 해/ 짓누르던 피곤을 내려놓고/ 곤히 잠드신 아버지처럼/ 저 길도/ 잠을 좀 자야겠지요.'라고…, 새벽 두 시에야 잠이 드는 골목길이 어느새 새벽에야 일터에서 돌아와 잠이 드는 아버지의 고단한 모습으로 환치되어 있다.

 

윤이현 시인(1941~)은 남원 출신으로 전주사범학교와 전주대, 원광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 전주 양지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는데, 그의 시는 이처럼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사물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서로 어울리고 교감하는 천진한 자연성의 발로 속에 온정적 휴머니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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