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운영팀장
'이벤트용 볼펜을 사는 데 조직 내부의 결재를 받고, 또 관련 상급 기관의 공무원의 결재를 또 받아야 해요. 조직내부 기관장보다 공무원의 결재 순서가 더 뒤인 것을 보고 우리가 막 웃었어요. 결재 받느라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정작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는 어느 정도 추진된 이후 중간 결재를 거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뭔가 아이러니 아닌가요?'
두 가지의 하소연은 문화관련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서 들어온 푸념이다. 두 가지 모두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결재를 했는데도 정작 자금 집행 과정에 있는 행정부서의 결재를 왜 또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이런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하는데도 정작 대형비리와 대형부정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소한 것들은 이중 삼중으로 걸러내서 업무의 비 효율화를 유발하고 있으면서, 정작 큰 것들은 전혀 감시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리라.
어느 분야의 일이든 모두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문화관련 일을 하다 보면 지나친 행정 바라기, 행정을 향한 줄서기를 느낄 것이다. 그것은 문화상품 자체가 인풋과 아웃풋의 불균형이 가장 크기 때문이리라. 유무형의 결과물 모두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문화상품임에도 양적인 평가와 자금 회수율만 가지고 아웃풋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일을 했음에도 무언가 잘못한 혹은 취조하듯이 아웃풋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행정 바라기의 고질적인 병폐는 춘향을 구하러 온 이몽룡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사서삼경을 줄줄이 단순 암기하여 과거 급제한 신진 행정 엘리트가, 자기 여자를 핍박한 지방 수령의 비리감찰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라는 설정. 이런 황당무계하고 전지전능한 혜안을 사대부집 도련님에게 부여하고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7급 공무원을 패러디한 영화만 봐도 내 주위의 공채출신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이능력을 지니지 않았던가. 아직도 여전히 선비가 최고이고 재인은 천인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편견은 업무 수행방식에 그대로 잔존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 내부의 크로스체크는 하지 않고 문화예술분야의 자금집행은 삼중으로 간섭하여 업무비효율을 갈수록 늘려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찾아가는 예술무대처럼, 행정은 단순히 감시와 견제만 하려 하지 말고, 현장에 나가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하기 보다는 담당자를 설득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런 시간이, 더 좋은 작품과 더 좋은 기획안을 위해 투자할 시간적 여유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문화정책 생산자를 끊임없이 늘려가고 모니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예향의 도시라는 말처럼 예술인도 많고 기획자도 많은데 정작 중요한 프로젝트에 항시 외지 인력을 전문가라고 (사실 전문가인지에 의문을 표하는 게 아니라 그 역량을 지역이라는 현장에 발현시키기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무리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늘 데려오는 것은 행정의 책임회피용 시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도 잘 알려진 팔길이 원칙을 새삼스레 다시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예단하지 말고, 우위에 서있다 자만하지 말고, 줄 세우지 말고, 함께 어울려서 일을 한다는 동지적 사고방식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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