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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남곤(金南坤)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는 시인

▲ 김남곤 시인

전주 난장에서

 

싸디 싼 회청 빛 조선 낫

 

한 자루를 사왔다

 

대장장이가

 

내 빼빼마른 손아귀에

 

쥐어주던 조선낫은

 

슴베가 유난히도 길고

 

묵직했다

 

나는 돌아와

 

그 조선낫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꽁꽁 숨겨둔 채

 

서슬 푸른 달밤

 

송충이 일렁이는 생솔 가지도

 

후려쳐 보고

 

밑둥 썩은 억새밭의 피 밭는 몸서리도

 

짓이겨 보고

 

내 가슴 속 때 없이 길어나는

 

굴절의 양심도 겁줘보면서

 

행여 녹슬까 한밤중

 

깊은 잠의 허리통도

 

끝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 '조선 낫'전문. 1991

 

그는 '조선 낫'을 가슴에 품고 '송충이 일렁이는 생솔가지 후려치'듯 '굴절의 양심' 솟구칠 때마다 그것을 후려 처내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농경사회적 질서와 문화적 코드를 담보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숨을 멈추지 않았네

 

하늘보다 큰 뱃구레도 하나 있네

 

살갗 헐어지지 않도록 사랑의 말씀 매어주는

 

바람 한 점만 있으면 그만이라네

 

그리고 날마다 누군가가 나를

 

피 비치게 장단 맞춰 두들겨서

 

이 세상 힘없어 주저앉은 서러운 것들의

 

오금만 펴 세울 수 있다면

 

난들 벗겨지고 찢어지는 생살을

 

뜬 세월에 맡겨둔들

 

무슨 한 있으리

 

나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네

 

질기디 질긴 이 땅의 한 숨을.

 

- '목어(木魚)' 전문

 

두들겨 맞더라도 '이 세상 힘없어 주저앉은 서러운 것들의/ 오금만 펴 세울 수 있다면' '피 비치게 장단 맞춰 두들겨' 맞더라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목탁 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사회 목탁의 길을 가고자하는 집요한 그의 순결정신, 그것은 일찍이 녹두장군이 부르짖다 꺾이고 말았던 보국제민·사인여천의 정신과도 다르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질기디 질긴 이 땅의 한숨'만 거둘 수 있다면 '난들 벗겨지고 찢어지는 생살'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의 결연함이 앞의 '조선 낫'의 정신과도 동맥을 이루고 있다.

 

별을 별이라 스스럼없이 부르고

 

강을 강이라 부끄럼 없이 부르던

 

아득한 옛날

 

별은 강물 속으로 내려와

 

시리게 더욱 빛났고

 

강은 별 밭 속으로 올라가

 

푸르게 더 넘실댔다

 

- '사람들의 나라'에서

 

'어둠이 장막처럼 밀려오고/ 어둠이 장막처럼 밀려가도' 끝내 사람의 길을 말없이 가고 있는 사람, 그러기에 정작 외로운 시대의 파수꾼, 오늘도 세상과 더불어 화광동진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혼자 '도마 위에/ 식칼을 베고 잠을 자는'('문어') 고독한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천도(天道)를 따라 거스르지 않는 순천(順天)사상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정중하다. 그것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농촌의 들녘, 곧 완주군 조촌면 만성리의 하늘과 땅과 바람과 별에서부터 비롯되어 있다고 보아진다. 거기에는 인종(忍從)과 배려의 화신이었던 어머니와, 타향처럼 이상세계만을 떠돌던 아버지, 그리고 다정하고도 순박했던 이웃들의 가난과 한숨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시의 원형질이며 진정성이다.

 

/김동수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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