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절을 두고 뒷날 많은 성현들이, '시 자체가 그러한(사무사) 것이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그래야 한다, 시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해석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해석이 옳다고 말하기보다 이 세 가지를 다 포함하는 말이라고 보면 되지 싶다. 시를 쓰는 일과 그 결과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80년대가 지나고 '시의 시대는 갔다.'고 시의 위기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이는 일면 옳고 일면 잘못 진단한 말이다. 인터넷 매체의 보급과 함께, 또한 문예지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시는 오히려 양적인 면에서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 확산되고 있다. 시인 지망생들은 중장년 혹은 노년층까지 다양하고 등단 시인이 아니더라도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에서 시인의 이름으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음도 보게 된다. 수많은 문학 동호회 활동도 왕성하다. 문학 가운데에서도 특히 시는 일대 부흥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동호인끼리 만든 조그만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해도 시인으로 호칭하며 시집도 내고 무슨 문학상도 주고받고 하는 걸 보면 이제 우리나라는 가히 시의 나라라 해도 손색이 없다. 좋은 일이다. 온 국민이 시인이라고 해서 나쁠 게 무엇인가?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개탄할 일이 적지 않다. 옛사람들은 마음의 사특함을 몰아내고 인격을 도야하려는 마음에서 서 · 화와 함께 시를 수양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앞서 인용한 '사무사'의 경지를 시로써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생애의 어느 대목에 이르러 뒷날에 남을 가편을 쓰기도 하는데, 요즈음은 이러한 시정신은 돌아볼 틈 없이 오로지 시인의 이름을 얻고자 시를 학습하고 시를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이 좀 있다하는 시인에게 첨삭지도를 받고 그렇게 해서 조립한 작품을 연줄이 닿는 문예지에 싣고 등단을 거치는 예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 사이에 금품이 오고가는 사례도 없지 않다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시의 시대는 갔고 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벼슬이 아니다. 등단은 면허증이 아니다. 명함에 시인 아무개라고 박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 페이지가 넘도록 약력을 채워 쓰는 게 중요하지 않다. 허욕과 허장성세는 사무사의 시정신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시인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온 인격과 영혼을 쏟아 부어서 이루어내야 할 것이 시이다. 시인이라는 허명을 얻기보다는 제대로 된 독자, 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다. 이 말은 물론 이름을 크게 얻은 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시인 그 이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참다운 시정신일 것이므로.
△ 복 회장은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등이 있다. 현재 남원 금지중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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