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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박물관 조선왕실어보는 도난품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 혜문스님·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
2010년 이후부터 미국 LA로 건너간 조선왕실의 어보(御寶)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현재 LA의 주립 박물관에 전시중인 이 어보는 높이 6.45㎝, 가로, 세로 각 10.1㎝ 크기로 거북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어보에는 조선 11대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를 가리키는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중종의 아들인 명종이 1547년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렬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 덕을 칭송하는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는 실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서울 종묘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어야 할 조선왕실의 어보가 어떤 이유로 LA까지 흘러가게 된 것일까. 어보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2010년의 여름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미국지역에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LA의 주립 박물관에 소장된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6·25를 전후한 시점에 이 어보가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경위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LA주립 박물관 소속 학예사로부터 수년 전 한 개인 수장가한테서 어보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상세한 과정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재단 기금으로 구입한 합법적인 소장품이어서 반환은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소극적으로 밝힌 박물관 측 입장까지 들었다. 그 무렵 필자는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국가기록원을 방문, '아델리아 홀 레코드'라는 이름의 문서 전문을 입수했다. 미국 국무부 소속 아델리아 홀 여사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 문서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불법으로 미국으로 흘러간 문화재 현황과, 그 문화재들을 본국으로 반환한 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미군 범죄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반환 경위에 대한 사항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 마이크로필름 4 :774에는'한국의 도장(Korean official seals)'이란 이름의 파일이 있었다. 그 안에는 1956년 5월 21일 아델리아 홀 여사가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 대사와 전화로 나눈 통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조선왕실어보 47개가 미군에 도난 당했다고, 신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보물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신문기사도 수록되어 있었다. 1953년 11월 17일 볼티모어 선 신문에 실린 기사였다. 양유찬 주미대사는 이 기사를 통해 "47개의 조선왕실의 도장이 미군에 의해 도난당했으니 행방을 아는 사람은 주미대사관으로 신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후 필자는 '문정왕후 어보를 되돌려 달라'는 내용의 반환요청서를 수차례에 걸쳐 LA 주립박물관에 보냈다. '6·25 전쟁 중 미군이 약탈한 문화재인만큼, 본국으로 돌려주기 바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LA 주립박물관 측은 답이 없었다. 무심하게 세월만 흐를 뿐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희망이 없는 싸움처럼 보였다.

 

지난 1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 교포들과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교포 회원들과 LA주립박물관 앞에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 측에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외치는 시위도 벌였었다. 국내에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LA소장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정치권의 호응이 뒤따랐다. KBS에선'미국에서 찾은 국보'란 이름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TV로 방영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각계 여론이 빗발치자 LA주립박물관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LA 박물관 측으로부터 "아직 한국정부로부터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란 어떤 지적도 없었다. 만약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다면 관련된 증거를 제출해 달라"고 대답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뿐만 아니라 11일 오전 (현지 시간) LA주립 박물관 당국자와 면담 약속까지 받아 냈다.

 

이날 면담에서 문정왕후 어보를 반환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아델리아 홀 레코드 등 각종 증거자료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오는 27일로 다가온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비록 민간 차원이지만 전쟁 당시 약탈된 문화재 반환협상이 시작된다. 과연 문정왕후 어보가 다시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뛴다.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 혜문스님은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중이며 2012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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