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귀신이나 호랑이, 도둑 얘기도 하셨고 권선징악의 고전도 스스로 스토리를 꾸며 가며 흥미를 돋우어 주셨다. 때로 그 이야기 담당이 아버지가 되거나 형님이 될 때면 이순신, 을지문덕, 강감찬 또는 세종대왕, 링컨, 간디 등 다양한 인물들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우리는 그런 영웅들의 얘기를 들으며 꿈을 꾸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시대였지만 그런 얘기들이 꿈을 심어 줬다. 삭막한 세상을 건너면서 허방에 쉽게 빠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영웅을 닮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탄생될 수 있지만 대체로 수난의 시대에 나타난다. 주권을 상실한 나라, 민권을 탈취당한 독재정권하, 전쟁과 기아상태에 있거나 민족이 곳곳에 흩어진 불행한 나라, 이런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그 어둠을 헤치고 일어서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존경을 받게 되는 사람이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영웅의 탄생이 어려워졌다. 대체로 많은 나라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정이 운영돼 명분 없는 전쟁을 할 수가 없고 매스컴의 발달이 한 개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용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내면까지 낱낱이 밝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정상적인 나라의 국민들은 영웅이 출현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또 아무나 영웅이라 말할 수도 없다.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의 조건으로 성실성과 통찰력을 들었다. 그래서 평생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소신을 실천한 걸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영웅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찰력이 부족한 나폴레옹은 인정하지 않았다.
동서양이 인정하는 현존하는 영웅이 있다면 그 호칭에 가장 적당한 인물은 누구일까. 그 답변으로 만델라를 든다면 나는 기꺼이 찬성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시한 최초의 평등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뽑힌 만델라는 필생의 목적을 성취한 90대 중반의 유네스코 친선대사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로서 남아공 옛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던 인물이다. 감옥생활 26년 만에 출소하여 62%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자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과거사를 청산하여 국가에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흑백차별이 지나쳤던 나라에서 민주화와 안정은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하는 경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영웅이 과연 필요한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가 되려면 모든 국정이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기반을 갖춘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투른 영웅적 오버액션이 평안을 깨뜨릴 수도 있는 나라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고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다. 적지 않은 충돌이 해마다 일어날 뿐 아니라 상대는 이제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집단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하나같이 통일을 열망하고 있고 그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민족에게 국군포로 귀환, 개성공단의 정상화,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문제 등 적지 않은 현안이 쌓여 있을 뿐 특별한 묘안은 없다. 신뢰를 쌓아 가면서 상호 협조해야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할 경우 좌시할 수 없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또 어떤 묘안으로 한 겨레 한 나라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통일이 되는 날 칠천만 동포는 그 선봉에 섰던 가장 헌신적인 지도자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것이다. 그런 영웅이 출현한다면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영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함께 고민하고 땀 흘렸던 우리의 동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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