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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삽질' 그 우직함에 대하여 - 신념을 가진 '삽질'은 값지다

▲ 어느‘가든’의 마당 한쪽에서 발견한 플래카드.

그 옛날 남정네들은 식솔들이 살아갈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 그 두 가지 ‘짓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가장의 기본이었다. (물론 여자들은 밥을 짓고, 옷을 지었다.)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연장 중 하나가 괭이와 삽이었다. 그런데 이 ‘삽’의 뜻이 다양하다.

 

‘삽’은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뜻으로 쓰인다. 거 왜 기공식 같은 걸 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한 높은 사람들이 예쁜 리본을 매단 삽으로 미리 쌓아놓은 흙을 두어 번 떠서 던지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던가. 그게 바로 ‘첫삽’이다.

 

우리말의 ‘-질’은 어떤 행동을 낮춰 부를 때 주로 쓴다. 훈장질, 도둑질, 손가락질, 선생질 등이 그런 예다. ‘삽질’도 예외가 아니다. ‘엉뚱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는 걸 비꼴 때도 이 말을 쓴다. 그런 경우 ‘삽질’은 ‘헛일’이고, 그래서 ‘헛삽질’인 것이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삽질하지 말라’가 된다. 옳은 말이다. 쳐다만 봐서는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말을 차돌같이 믿고 열심히 도끼질을 해야 나무를 올라가든지 넘기든지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삽질 정신’이다. 불도저 앞에서 삽질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 어떤 불도저가 굉음을 내지르며 흙을 뭉텅뭉텅 퍼내도 한 삽 한 삽 꿋꿋이 떠낼 줄 아는 게 ‘삽질 정신’이다. 그걸 잘 보여준 인물이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다.

 

거의 맨주먹으로 월남한 그는 ‘삽질 정신’으로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리면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나무랐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앞을 가로막는 이들한테는 언제 해본 적은 있느냐고 호통을 쳤던 이가 바로 정주영이다.

 

당시 5백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배짱 좋게 들이대서 26만 톤짜리 선박 공사를 수주했던 사람이니 그만하면 말 다했다. 말년에는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떼 천 마리를 자신이 만든 트럭에 나눠 싣고 북한으로 향하는 장관까지 연출했다.

 

‘삽질 정신’의 대가는 따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고졸, 그것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인 그는 순전히 ‘삽질’ 하나로 자신을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라도 말로 ‘헛심 팽기는 일’의 대가였던 것이다.

 

‘부림사건’에 뛰어든 것부터가 그랬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그는 정치 생명이 걸린 ‘3당 야합’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삽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알려진 대로다.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 모두 삽 하나만 달랑 들고 부산 지역에 출마했다가 ‘불도저’에 밀렸다.

 

‘불도저’의 힘을 맹신하는 이들에게 그의 행보는 늘 ‘삽질’ 자체였다. 제 무덤을 파는 한심하고 철없는 짓이었다. 스스로를 수렁으로 몰고 가는 무모하기 짝 없는 행동이었다. 그야말로 ‘-질’에 불과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노사모’가 그걸 증명했다.

 

대통령이 되고도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삽질’하기를 결코 주저하거나 멈추지 않았다.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아무리 그게 ‘삽질’이라 해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이른 죽음이 그래서 더욱 아픈 것이다.

 

불도저로 흙을 파내거나 옮기는 건 손쉽고 빠르다. 그게 상식이고,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길이다. 그에 비하면 삽질은 수십 수백 배 고되다. 그래도 신념을 가진 삽질은 값지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은 불도저가 아니라 그런 삽질에서 나온다.

 

어느 ‘가든’의 마당 한쪽에서 발견한 그림의 ‘삽질닷컴’은 거기 적힌 그대로 미니 포크레인 임대와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어느 사업체의 이름일 것이다. ‘헛일’로 보편화된 ‘삽질’을 업체명으로 쓴 발상이 참신하다. 게다가 ‘삽질 정신’을 감안하면…, 이 또한 재미도 있지 않은가.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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