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대학생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등록금
그것은 좀 숙연한 이야기였는데,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길어야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다음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용주형이 노동판에서도 일당이 가장 높은 험한 일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여름엔 시멘트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건축현장에서 어깨에 고름이 흐르도록 질통을 메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공중 철판을 오르내리고, 겨울이면 이 산 저 산 능선으로 고압선 철탑을 세우는 작업현장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짧은 방학동안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국립대학 등록금과 최소한의 기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자 용주형이 거인처럼 우러러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으로 따르며 꽤 가깝게 지냈고, 졸업 후엔 서로 다른 길로 가 소식이 끊기게 되었지만 그 시절 고학생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며 청운의 꿈 역시 그런 거였지요. 푸른색의 구름은 어두운 색의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위와 벼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젊은 시절 성취하는 학문과 연구의 비유이기도 하지요.
그때 헤어지고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용주형을 오늘 새삼스레 떠올린 건 지금 우리 아들세대의 청년실업과 학자금대출로 비롯된 청춘의 빚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00만 명쯤 되는 대학생의 절반이 넘는 160만 명이 이런저런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고, 그중에 연 20%의 고금리대출을 빌린 학생도 9만명에 이르며, 청춘의 시작부터 빚을 갚을 능력이 바닥난 대학생이 5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며 시작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쟁이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여려워지는 것이지요.
대학생들이 이렇게 돈을 빌리는 이유가 무얼까요. 물으나마나 우선 학생 스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싼 등록금과 비싼 생활비 때문이겠지요. 저렇게 힘들게 빚을 안고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다음단계로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서 우리 아비세대의 고학생 용주형 얘기를 한 것은 우리 세대는 스스로 이렇게 마련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비세대는 한여름 건축현장이든 한겨울에 바람 쌩쌩 부는 능선에 올라 철탑작업을 하든 짧은 방학동안 자기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여건이라도 되었지만, 지금 학생들에게 등록금은 방학동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제법 괜찮아보이는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조차 자녀학비 마련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현실이 아닌지요. 이렇게 학비를 대출받지 않으면 안될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 되어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는 고학생이라는 말은 그 아이들이 방학동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져버린 등록금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반값 등록금' 국가가 나서서 해결을
우리 아비세대는 어쩌다 이런 여건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일까요. 집에 학생이 있든 없든 이런 현실이 정말 너무 답답하지 않은지요.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청운의 빚을 떠안고, 끝내는 그 빚에 눌려 신용불량의 실업자로 대학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저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선거 때만 되면 반짝 나오는 반값 등록금 문제, 이거야말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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