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2 05:55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기고
일반기사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통곡한다

정성은 군산대 인문대학 학장·중어중문과 교수

어머니는 통곡한다. 가라앉는 캄캄한 뱃속, 목까지 차오르는 오싹한 바닷물에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을 아들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통곡한다. 아직 살아가야할 세월이 창창한 열일곱 살, 어린 영혼들이 ‘세월호’ 뱃속에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배가 기울어지는 급박한 순간에도 ‘선실에 대기하라’는 방송에 구명복 입고 겁에 질린 채 쪼그려 앉아 있던 모습에 엄마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언어는 왜 이리 무기력할까? 이 분노, 이 아픔, 이 절망, 아! 믿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 상황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미친 듯 뛰면서 울어보고, 주먹으로 벽을 치며 분노해 봐도 선실에 갇힌 채 죽어가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어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실신한다. 핏덩이를 낳아서 17년 동안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했던 내 자식들, 오직 너로 인해 살아 왔던 엄마이거늘, 너로 인해 행복했던 엄마이거늘, 너는 그 춥고 어두운 바다 밑에 그리 말없이 갇혀있단 말이더냐? 어서 일어나, 어서 배를 뚫고, 바다 건너, 엄마에게 오려무나, 어서 와서 말 해다오 “엄마, 사랑해”라고.

 

어머니는 모르겠다. 왜 선장이나 승무원 들이 아이들과 여자들을 먼저 탈출시키지 않았는지? 침몰 이후 첨단장비와 무인로봇까지 동원된 구조 활동은 왜 그리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웠는지? 수백명의 잠수부와 먼 길을 달려 온 크레인은 골든타임을 모두 놓치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지?

 

어머니는 분노한다. 생사도 모른 채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엄마에게 자신이 모시는 장관이 왔노라고 귓속말을 건네는 사람들. 이번 사고를 사칭하여 사기문자를 발송하는 모리배들. 보도경쟁으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생존자 수를 오보하는 언론들. 심지어 살아 온 교감을 여론몰이로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엄마의 분노는 진도 앞바다의 검푸른 물결보다 더 성낸 듯 울부짖는다.

 

어머니는 증오한다. 조선 산업 세계 최강이라는 나라에서 20년이나 지난 낡은 일본산 배를 가지고 와 그저 돈벌이에만 급급한 업자와 그걸 관리 감독하는 국가기관의 무능을 증오한다. 가진 자와 배운 자 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앞장서서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해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종된 나라. 세월호의 침몰과 재난 대처 과정은 성장과 부만을 좆아 살아온 우리들의 부패한 영혼과 일그러진 모습을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진정 이러한 모습이 대한민국의 품격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하프’하나 달랑 들고 저승으로 길 떠났던‘오르페우스’처럼 결연하게 이 땅의 어머니는 다시 일어 설 것이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라는 문자를 숙명처럼 받아들고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이토록 허망하게 보내지 않도록, 떠나간 자식들의 빛나는 청춘과 찬란한 꿈과 아름다운 희망이 꽃 피울 수 있도록 단장(斷腸)의 슬픔을 떨치고 다시 일어 설 것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