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살리고 죽은 어미 꿩
꿩은 겁이 많고 잘 놀란다. 소리에 민감하고 성질도 급하다.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부리도 시원찮다. 외부의 공격에 최소한의 방어를 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공격 무기도 없다. 날개가 짧아 멀리 날지도 못한다. 그저 꿩꿩 울면서 바람만바람만 도망가는 것이 최상의 무기다.
꿩은 새끼가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어미가 잡힐락 말락 한 거리만큼 날아가서 앉는다.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며, 꿩꿩 우는 소리로 상대방의 관심을 제 쪽으로 끈다. 어미는 잡혀줄 듯 말 듯 몸을 피하면서 새끼들이 있는 둥지로부터 멀리 날아가 새끼들을 보호한다. 친구가 산책길에 만난 꿩은 느닷없이 사람과 맞닥뜨리자 새끼들을 데리고 피할 겨를이 없었으리라. 사람의 관심을 새끼가 없는 곳으로 돌릴 시간이 없었으리라. 다급한 꿩은 새끼를 보이지 않게 날개 아래 숨겨 품고 사람의 손길을 받으며 불안하고 또 두려웠으리라. 끝까지 새끼를 보호하느라 도망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받은 스트레스는 겁이 많은 어미 꿩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리라.
꿩보다 못한 어른들이 ‘세월’ 속에 아이들을 무더기로 수장했다. 짓궂게 웃던 모습도, 뾰로통하게 볼이 부어있어도 귀엽기만 하던 모습도, 여드름이 톡톡 솟은 모습도, 변성기에 접어든 목소리로 짓궂게 엄마를 놀리던 모습도, 무엇을 해도, 어떻게 해도, 사랑스럽던 아이들을 깊고 캄캄하고 차가운 바다에 내던졌다. 기도도, 후회도, 눈물도, 자책도 ‘세월’ 앞에서는 참말이지 무력하기만 하다. 무겁게, 느릿하게, 4월이 간다.
봄 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꿩 둥지를 발견했다. 같이 간 일행이 둥지에서 알 세 개를 꺼낸다. 작고 따뜻하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금방 깨질 것 같다. 삶아 먹으면 몸에 좋다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랬다. 알을 잃어버린 어미 꿩은 어떡하라고 그러냐며 알을 둥지에 도로 넣어주라고 했다. 얼마나 모질면 그 작은 것을 어미에게서 빼앗아 끓는 물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나 싶어 슬그머니 부아가 나기도 했다. 새끼를 빼앗긴 슬픔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져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리라.
아이들 무더기로 수장한 어른들
그러나, 오월이다. 산꿩은 도란도란 낮게 날고 꾀꼬리는 황금빛 사선을 그으며 날아가리라. 개개비는 갈대 사이에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까치는 새끼들 입에 물릴 양식을 구하러 일터에 나가리라. 부모는 자신의 생을 기꺼이 자식에게 바치고 아이는 잘 자라 부모의 영광이 되리라. 스승은 제자를 힘껏 돌볼 것이고 제자는 성큼성큼 자라 스승의 어깨가 든든하리라. 이후로도 오래, 아니 몇 겁을 거듭 태어나도, 아이는 부모를 배우고 제자는 스승을 본받아 또 다른 내가 태어나고 죽고 또 영원히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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