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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충남 공주] 혁명의 꿈 묻힌 우금티 '역사의 그늘' 오늘날에도 여전

위령탑 '정권 정당화 희생물' 전락 평가 / "보수적 풍토, 농민군 진압에 의미 부여" / 기념시설·사업 추진 놓고 시각 엇갈려

▲ 지난달 30일 윤여관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이 우금티 위령탑의 비문을 바라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정읍 황토현 전승지와 전주성 점령이 빛이라면 공주 우금티는 그림자다. 서울을 향해 진군하던 동학농민군이 당시 충청도 수부였던 공주감영을 점령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했으나 한일연합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졌던 곳이 바로 이 우금티였다.

 

우금티의 그림자는 오늘에까지 역사적 상흔을 안은 채 길고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농민군이 우금고개를 넘지 못하고 혁명의 꿈을 고개에 묻었듯이, 공주에서 그 혁명의 역사는 오늘날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보였다. 최대의 격전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기념시설도, 선양사업도 지역사회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농민군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중심으로 매년 열리는 추모예술제가 공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잘못 끼운 단추 ‘위령탑’

 

“기념탑 타일이 이렇게 흉물스럽게 벗겨졌는데 어떻게 이리 방치할 수 있나요? ”

 

지난달 30일 ‘동학농민군위령탑’이 세워진 우금티 사적지에서 만난 방문객의 첫 반응이었다. 공주가 고향으로, 현재 경기도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는 그는 고향을 지키는 아버지와 함께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고교생 딸에게 알려주려고 찾았단다. 뙤약볕을 뚫고 찾은 이곳의 모습에 실망한 그는 더 이상 내용물들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서둘러 현장을 떴다.

 

2차례의 공주전투에서 수천 명의 농민군이 숨졌던 우금티의 피어린 역사가 위령탑에 상징적으로 새겨졌으나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적 희생물로 평가되고 있다. 정읍 황토현에 세워진 기념탑보다 10년 늦은, 1973년 건립된 우금티 위령탑은 당시 천도교 공주교구장이었던 이창덕 씨를 중심으로 건립위원회를 꾸려 만들었다. 100여 ㎡ 부지에 황토현기념탑을 닮은 8m 높이 위령탑의 비문은 동학농민혁명이 5.16과 10월유신으로 이어진다고 새겼다.

 

‘님들이 가신 지 80년, 5.16혁명 이래의 신생조국이 새삼 동학혁명군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10월 유신의 한 돌을 보내게 된 만큼 우리의 피어린 언덕에 잠든 그 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세우노니(중략) 그 위대한 혁명정신을 영원무궁토록 이어받아 힘차게 선양하라’

 

‘5.16’과 ‘10월유신’, ‘박정희 대통령’ 등의 비문은 누군가에 의해 뭉개지면서 탑 자체가 수난의 역사가 됐다. 농민군의 원혼을 볼모삼아 정권을 정당화시키려 했던 기념물로 전락하면서 이 기념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얼핏 벗겨진 외형이 안타까울 수 있지만, 농민군의 원혼을 욕보인 기념물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념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실제 본보 취재팀이 100주년 당시 이곳을 답사한 후 20년이 흘렀지만 공주에서 우금티전투를 기리는 사업들은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해 보였다. 20년 전 ‘우금치’에서 ‘우금티’로 이름이 바뀌고(동학농민혁명 당시 이름), 1994년 이 일대가 사적지로 지정됐으며, 주변에 조형물 몇 개가 설치된 정도가 변화된 모습이었다.

 

△보수적 지역풍토 속에 한계 드러내

 

동학농민혁명 전체 과정에서 큰 상징성을 갖는 공주에서 당시 역사가 외면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역적으로 보수적 풍토가 강해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곳이라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서울 진격을 막아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이 더 우위라는 이야기입니다.”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윤여관 운영위원장(51)은 이런 풍토 속에서 진행되는 기념시설과 기념사업의 한계를 지적했다. 공주시에서 위령탑의 보수작업과 리모델링을 하려 하지만, 사업회에서 이를 막는 것도 그 이유란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게 사업회의 ‘사업’인 셈이다.

 

“한 번 만들어졌으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켜야 한다. 위령탑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나 성급하게 만들어졌으면 30년 밖에 안 된 탑이 이런 몰골이겠는가. 이 자체가 우리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반면교사로 보는 것이다.”

 

윤 위원장은 100년, 200년이 지난 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곳이 폐허가 되면 거기서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땅을 다룰 줄 아는 미적 시각이 생기기 전까지는 어설피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날처럼 성장주의 사회에서 배고파 일어난 농민군의 마음을 살필 수 없다고 여겼다. 내 배만 채우려는 시대에 사는 우리가 기념할 만한 자격이 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던졌다. ‘나눔과 배려’의 동학사상을 바탕에 깔지 않은 기념물은 언젠가는 다시 쓰레기가 될 것이며, 이것저것 조악하게 만든 시설만을 설치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역사적 공간 적극 활용 필요

 

이런 현재의 시민사회 활동과 모습이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초기 우금티사업회를 이끌었던 조재훈 충남교육연구소 이사장(67, 전 공주교대 교수)은 동학농민혁명 관련 공주의 역사적 공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보수적 특성상 100주년 당시만 해도 위령제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의 거부감이 강했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의 제사를 왜 공주시민들이 지내야 하느냐고 반대운동까지 있었습니다.”

 

조 이사장은 기념일을 만들고 예술제 등 여러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그런 위화감이 많이 없어지고 이해가 넓어졌다고 했다.

 

그는 특히 공주시에서 추진하려 했던 우금치 전적지 성역화 사업이 무산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공주시는 애초 2002년까지 전시관 등을 건립할 계획으로 주변 토지를 매입하는 등 의지를 가졌으나 무산됐고, 이후에도 대학에 용역을 맡겨 사업계획을 세웠으나 흐지부지 된 것을 두고서다.

 

“공주가 교육의 도시 아닙니까. 탑도 다시 만들고, 전투지 탐험로를 만들어 학생들 체험도 할 수 있는 산교육장을 만들면 역사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백제가요 정읍사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공주·부여에 갇힌 백제문화제를 익산 등으로 확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정신적인 측면도 강조했다.

 

● 우금티기념사업회, '시청 책상 엎어가며' 우금티 전투지 지켜

▲ ‘송장배미’에 있는 기념조형물.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전투지였던 공주는 우금티 외에도 동학 관련 유적지가 산재해 있으나 위령탑 외에 달리 기념시설들이 많지 않다. 혁명의 전사를 이룬 ‘교조신원운동’이 최초로 일어났던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집회 터, 공주에서 농민군과 관군 간 첫 전투가 벌어졌던 ‘남월 전투지’, 우금티 전투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지 ‘견준봉과 두리봉’, 우금티 전투에 앞서 공방을 벌였던 ‘이인전투지’와 ‘효포·능치’ 전투지 등에는 표지석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 다만 농민군 18명이 숨졌다는 ‘송장배미’에는 기념석과 기념조형물(윤여관 작)이 설치돼 공주전투를 알리고 있다. 이곳은 도로가 뚫리면서 자칫 사라질 위기에 있었으나 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시청 책상을 엎어가며’ 지켜냈다.

 

공주대·공주대 교수와 향토사학자, 농민운동가 등을 중심으로 꾸려진 우금티사업회는 공주의 동학농민혁명을 지켰던 파순꾼. 우금티 고개 자체를 없애려는 도로공사에 맞섰고, 현재도 원래 능선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매년 추모 제례와 연극공연, 체험프로그램, 토론회 등의 추모예술제를 열어 당시의 역사를 시민들에게 기억하도록 해왔다. 올해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작품을 대본으로 ‘우금티 극단’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혁명’대신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명칭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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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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