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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말고'의 교훈

▲ 소재호 석정문학관장·문인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여우가 포도송이를 따려 했다. 아무리 높이 뛰어도 포도덩굴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여우는 ‘저 포도는 매우 신 거야’하고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지는 않고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며 자가당착하는 그런 세상 사람들의 일탈을 풍자로 경계한 우화인 것이다.

 

삶 포기하는 우를 범해선 안돼

 

필자는 한때 유행하던 ‘아니면 말고’라는 말을 상기한다. 정치권에서 득세한 세력이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상대편에게 허위 사실을 퍼뜨려 그에게 심대한 인격 모독을 끼친 뒤, 이에 강력히 항의하면, 그때에 슬그머니 ‘아니면 말고’하면서 물러서는 야비한 경우들이 많았다. 이미 그 헛소문으로 상대편의 이미지는 말이 아니게 추락한 후였다.

 

그야말로 비굴한 언동의 극치였다. 이때에 그 헛소문을 일컬어 유비통신이라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에 치달을 즈음 정치권에서의 마타도어는 한국인의 얌전한 정서를 뿌리 채 뒤흔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솝 여우의 ‘아니면 됐고’나 유비통신의 ‘아니면 말고’는 그 의미상 사뭇 대칭적이다. 전자는 자기 변명을 위해 소용된 말이고, 후자는 상대방 비방을 목적으로 한 꼴사나운 언사인 것이다. 그러나 다같이 경계해야 마땅한 언동인 점에서는 틀림이 없다.

 

필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니면 말고’를 우리가 슬기롭게 살아가는 데에 교훈으로 삼자는 화두를 감히 던진다. 말하자면,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하여 열심히 정려하고서도 실패하면 스스로 심한 좌절감이나 낭패감에 함몰되어 생동하는 삶을 포기하는 우를 범할가 싶어서이다. 속담에 ‘놓친 물고기는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역설로 받아들여서 놓친 고기는 너무 작고 하찮은 것이라고 스스로의 마음에 다잡자는 것이다. 한때 성취가 좌절되면 이를 빨리 체념하고 패망감에서 탈출하여 제2의 목표를 설정하다면 언제나 생동하는 슬기로운 삶이 전개될 터이다. 그러니까 놓친 것, 실패한 것, 운이 따르지 않은 것 따위를 몰아쳐 ‘아니면 말고’를 목청껏 부르짖을 일이다. 이는 인생 반전을 위해 지극히 필요한 자기 심리적 치유의 한 수단인 것이다. ‘돈 잃고 사람 잃은다’라는 말은 돈 잃었을 때 곧 바로 ‘아니면 말고’를 스스로에게 외치지 못하고 연속적으로 불운의 기운 속에 자신을 침몰시켜 버린 자기 괴멸의 경우인 것이다. 말도 안되는 자해라든지,자학이라든지, 또는 자살하는 행위는 이 ‘아니면 말고’를 일상화하지 않는데에서 연유한다. 성취하여 거머쥔 것은 거룩한 것이요, 놓친 것은 한낱 티끌이요, 앞으로 쟁취하려는 것은 높고 높은 가치의 대상이라고 자신에게 자꾸 관념지울 일이다.

 

저 다윗왕이 했다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은 차제에 효용성을 높인다. 오늘 노심초사하며 또는 전전긍긍하며 애태우던 일은 내일이면 아무것도 아닌 티끌에 지나지 않는 법, 한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를 일컬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한다면 우리의 오늘 이쯤에서의 우울은 대번에 싹 가시고 말 것이다.

 

앞으로 할 일, 큰 가치 있다고 생각을

 

필자는 근래에 온 세상을 다 놓고 자살하여 이승을 떠난 한 친구를 자주 생각했다. 그는 비교적 유복했는데도 처자식과 지구 전부를 티끌로 여기고 어둠에게 묻혀버렸다. 그는 필자에게 반면 선생이 되었다. 하루하루 나에게 몰려오는 번뇌나 어려운 일상이 친구의 버린 것들에 비하면 너무 작은 미세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이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두려움도 삭고,부끄러움도 쇠멸되는 소위 수신의 경지가 이룩된 셈이다. 결국 일체유심조라는 명언에 귀의한다. 포획한 포도는 달고,놓친 포도는 시며, 앞으로 다시 따려는 포도는 천금의 가치가 있다고 여김으로써 나를 영활케 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충고한다. “인생은 헛되고 허무하다. 그러나 치열하게 생동하라. 그대의 운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지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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