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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인정해야 평화가 온다

▲ 곽병창 우석대 교수
고등학생이 스스로 만든 인화물질을 들고 토크콘서트장에서 난동을 부리다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른바 종북콘서트라고 낙인찍어서 마녀사냥을 해댄 그 행사이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종북이나 친북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소용이 없다. 그저 누군가의 눈에 종북으로 비치고 그 생각을 마구잡이로 퍼뜨리기만 하면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낙인은 확산된다.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들이다. 철없는 고등학생을 의사, 열사라 칭하고 후원금을 모으는 등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진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긴 이념 전쟁의 질긴 후유증이 어린학생들의 의식에까지 끔찍한 증오의 싹을 대물림하고 있는 셈이다.

 

반세기 훌쩍 넘긴 이념 전쟁

 

서양의 역사에서 마녀사냥의 어두운 기억은 후세인들에게 집단적 증오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개척시기 세일럼 마을의 마녀재판에서는 어린 소녀들의 무지와 불장난이 삽시간에 어른들 사이의 증오로 이어져서 짧고 강렬한 집단적 비극을 만들어냈다. 유부남 목사를 유혹하려던 한 소녀의 빗나간 사랑과 저주, 거짓 증언이 온 마을에 증오의 연쇄반응을 일으킨 결과였다. 아더 밀러는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미국사회에 이 이야기를 꺼내옴으로써 통렬한 교훈을 전하려 했다. 수백 명을 투옥하고 수만 명을 조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삽시간에 광풍을 일으킨 매카시즘은 실로 무서운 기세로 미국사회를 잠식한 사건이다. 극작가 자신은 물론 희극배우 채플린이나 음악가 번스타인 등 유명한 대중적 인기인들도 이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아더 밀러가 〈시련 crucibl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세일럼의 마녀재판 이야기에는 철없는 소녀 애비게일이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빗나간 사랑과 그로 인해 겪는 모욕감을 해소할 탈출구로 온 마을을 마녀사냥의 광풍에 휩싸이게 하는 길을 택했다. 흥미롭게도 매카시즘의 창시자인 조셉 매카시 의원도 온갖 추문과 범법행위로 인해 파멸 직전에 있던 정치인이었다.

 

오래 전에 사라졌어야 할 매카시즘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고비 때마다 고개를 쳐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 냄비 투척 고등학생은 어찌 보면 그 스스로 어처구니없는 선동의 희생양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은 엄히 꾸짖고 타일러서 집에 돌려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잡아가두고 처벌을 하는 것으로 저 빗나간 증오심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주장대로 오도된 ‘열사’의 길을 가도록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여전히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번져가는 우리 사회의 레드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궁리는 이 뿌리 깊은 피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생각이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이다.

 

레드 콤플렉스 극복 방안 고민할 때

 

북한에도 도깨비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건 이미 몇 십 년 전에 다 알려진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는 말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은 참 무섭고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슬픈 생각을 떨치지 못 하는 이들의 존재도 엄연한 실체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오래된 피해의 기억을 어떻게 새로운 상생의 기운으로 바꾸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대로 우리가 잊은 것들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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