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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사 복원 위한 바람들

▲ 곽장근 군산대 교수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후백제 멸망의 비통함을 토로했다. 우리 역사에서 두 번의 큰 비극 중 후백제가 망하면서 삼국의 책을 다 모아 놓은 전주의 서고가 불타버린 것을 하나로 꼽았다. 물론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에 후백제의 역사를 전해주는 문헌이 없다. 그리하여 혹자는 후백제사를 제2의 가야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후백제처럼 문헌이 없었던 가야사는 가야 사람들이 남겨 놓은 유적과 유물로 거의 복원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후 후백제사를 복원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추진됐으면 하는 몇 가지의 바람들을 당부하고자 한다.

 

운봉고원 철·사신 왕래 길 연구 필요

 

후백제가 융성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견훤은 무진주에서 나라를 세운 뒤 남원 실상사에 큰 관심을 두어 조계암 편운화상 부도에 후백제 연호인 정개가 유일하게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철불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실상사에 왕실 차원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운봉고원의 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후백제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삼국시대 기문국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철이 절실했을 것이다. 운봉고원의 철과 그 역동성을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후백제와 오월의 사행로를 복원해야 한다. 견훤은 무진주에서 나라를 세운 뒤 45년 동안 오월과 돈독한 국제외교를 펼쳤다. 중국 절강성 항주에 도읍을 둔 오월은 중국 청자의 본향으로 우리나라의 청자기술도 오월의 월주요에서 전래됐다. 거의 반세기 동안 양국의 사신들이 오갔던 사행로가 중국 청자기술의 전파 루트로 추정된다. 921년 동리산문 경보가 30년 중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그를 영접하기 위해 견훤이 만경강하구 신창진을 찾았다.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 소상산 부근 신창진은 후백제의 국제교역항으로 추측된다.

 

진안 도통리를 떠난 초기청자가 어디로 유통됐는지 그 흔적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만을 생산하다가 갑자기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 아마도 수만 점 이상의 초기청자가 진안 도통리를 떠났지만, 지금까지 진안 도통리 생산품으로 학계에 보고된 초기청자가 한 점도 없다. 다행히 전주 동고산성을 중심으로 후백제와 관련이 깊은 절터와 산성에서 초기청자가 출토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후백제가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를 운영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가 절실하다.

 

후백제 불교미술의 우수성과 그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완주 봉림사지 석탑과 석등, 불상이 후백제 불교미술의 존재와 그 예술성을 세상에 알렸다. 견훤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완주 봉림사지가 있었다면, 후백제와 신라의 사신들이 오갔던 사행로가 통과하던 백두대간 육십령 부근에 장수 개안사지가 있다. 이 두 개소의 절터를 중심으로 후백제 때 창건됐거나 융성했던 것으로 밝혀진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추진됐으면 한다.

 

진안 도통리 청자 유통경로 찾아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후백제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단지 문헌 기록이 없을 뿐이지 후백제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후백제가 융성할 때 나라가 갑자기 망해 후백제의 유적과 유물에서 위풍당당함이 느껴진다. 비록 후백제가 반세기라는 짧은 역사를 마감했지만 전주에 도읍을 두어 천년 전주를 있게 한 역사의 뿌리가 됐다. 후백제가 남겨놓은 매장문화재는 후백제사의 블랙박스와 같은 것이다. 후백제사가 복원될 때까지 후백제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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