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대통령의 힘 그리 크지 않아
대통령제 하에서 가장 힘 센 사람이 대통령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적인 대통령제라면, 대통령은 절대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과 의회 간 구조적 분리이며, 또한 이 분리된 두 기관이 정책결정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늘 국회의 견제를 받게돼 있으며, 국회의 협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권력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 하에서 수상이나 총리가 의회의 협력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대통령제의 성패는 대통령-의회 간 협력의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 누리던 제왕적 권한은 민주화가 되면서 이미 사라졌지만, 우리 기억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어졌어도 제왕적 ‘대통령’의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적으로 대통령 권한이 매우 제한적임에 틀림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여전히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주된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속한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이다. 이 두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 이 두 권한 또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여전히 중요한 당근임에 틀림없지만, 최근 총리와 장관 임명 동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고유 권한 또한 상당 부분 국회, 그리고 여론의 견제를 받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의원 공천권은 실로 엄청난 권력이며, 비민주적 정당 구조를 가진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권력 또한 점차 줄고 있다. 3김(金)이 물러난 이후 정당 구조가 과거에 비해 점점 분권화되고 있으며, 단임제 하에서 레임덕 현상의 조기화로 인해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정치 현실과 기대와의 커다란 격차에 있다. 많은 국민, 언론, 그리고 심지어 정치엘리트조차도 대통령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 하에서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의 감소를 경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향후 한국 대통령제의 올바른 개혁 방향은 대통령의 권력 약화가 아니다. 이미 대통령의 힘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한적이며, 국회의 힘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회 양자 간에 견제와 함께 동시에 협력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의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적절치 않다. 사실 이 제도의 취지는 대통령 힘의 약화가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 간 연결고리의 마련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으로 활발한 정당 필요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중임제의 도입을 통한 레임덕 현상의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발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민주적으로 활발하게 작동하는 정당을 연결고리로 대통령과 국회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해서 당장에 시급한 것은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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