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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찬가

▲ 진창선 문학평론가
국민·영토·주권, 이 삼 요소를 갖춘 정치 집단을 국가(나라)라 이르며 나라의 이상과 국민의 기백을 표현하여 의식(儀式)에서 부르는 노래는 국가(國歌)라 이른데 이는 국가에서 제정한다.

 

한편 국제경기 때는 시상식마다 국기 게양과 함께 자연 그 나라 국가(國歌)도 연주한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올해는 우리나라가 어언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지만 7천만 겨레가 다 함께 부르는 국가가 제정되지 않고 있다.

 

돌아보면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일제 36년의 혹독한 식민지하의 암흑 세계야말로 슬프고 원통함에 앞서 앞을 바라보지 못한 위정자들 그리고 민족을 배반한 친일 인사들의 과오는 교훈 삼아야 한다.

 

36년만의 조국의 광복도 남북간의 이념의 충돌로 불안하더니 끝내 동족상잔의 비극만 남겼을 뿐 지구촌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으로 꿈에도 소원인 통일의 그 날만 과제로 남겼을 따름이다.

 

더욱이 체제까지 다른 상황이고 보니 동포가 함께 부를 국가의 제정은 통일과 함께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처지인데도 한편에서는 ‘애국가’를 국가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우선 외국의 국가 하나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사랑하는 산(山)의 나라, 우리가 사랑하는 산의 나라, 파도가 에워싼 바다의 나라, 위대한 조상이 사신 땅, 꿈을 전하노니 그 역사, 꿈을 전하노니 우리 역사’

 

노르웨이가 1864년에 국가로 제정한 가사이다. 잠깐 내용만 살펴도 조상이 살아온 국토와 역사에 대한 사랑이다. 여기엔 무엇보다도 이념적 사상이나 종교적 색채 등의 편향은 일체 없는 사뭇 순수하고 소박한 노랫말이다.

 

그러나 ‘애국가’는 작곡자부터가 문제 되어 냉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애국가’의 작곡은 일제 꼭두각시로 세운 만주국 창립기념을 위해 음악작품을 만든 음악가가 곧 한국인인 데다가 지휘까지 맡았으니 시비는 어쩔 수 없었을 터.

 

더구나 ‘친일인명사전’에도 실렸다니 두루 반성의 거울로 삼아야겠다. 무릇 비판 없는 문화는 발전할 수 없다 했으니 예술성을 들추는 것도 우문이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역사가 있는 민족은 아름답다고 했으며 신채호 선생도 일찍이 나라를 사랑하려면 역사부터 배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광스럽게 우리 한국은 찬란한 문화유산 중 ‘판소리’에 이어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다시 작년에 북한에서도 곧장 뒤를 따라 등재되었으니 언제 어디서나 함께 부를 ‘조국 찬가’로 반갑고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특히 우리의 민요 ‘아리랑’은 단조로운 선율에 정겹고 은은해 부르기도 매우 쉬어 이젠 명실공히 세계인을 즐겁게 위로하는 노래로 사랑받게 되었다.

 

전하는 일화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톨스토이의 눈물까지 흘리게 한 것도 거기에는 그 나라 민요가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방한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한국찬가’를 출판했다.

 

동포여, 언제나 함께 부를 조국 찬가 ‘아리랑’을 사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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