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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의 정수를 보다

▲ 류광열 한국폴리텍V대학 외래교수·문학박사

마이산은 너무도 많은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마이산이 가진 형상과 그 형상을 통해 떠올려져서 만들어지는 원형(archetype)적 서사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구조를 만들어내는 기본은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에서 비롯된다. 마이산은 이 두 개의 봉우리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원형적 틀을 조금 더 구체화시킨 이야기를 화엄굴과 은수사가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두 곳이 마이산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이산 이야기의 핵심을 보려면 북부 마이산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부 마이산 주차장에서 암마이산 정상까지는 초등학생 정도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철책을 이어 박아서 그것을 잡고 오르면 된다. 암마이산 정상에 서야 비로소 숫마이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암마이산에서 하산해서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숫마이산에 있는 화엄굴로 접근할 수 있다. 화엄굴 위를 보면 풍화되어가는 돌들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오랫동안의 접근금지 상태를 해제한 것을 보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화엄굴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돌덩이에서 샘물이 솟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바로 생산적 이미지를 투사(projection)한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남근석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화엄굴의 샘물을 마시면 아이 갖지 못하던 여인네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 것 같다. 화엄굴에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은수사가 있다. 은수사에 다다르면 암마이산이 가장 크게 잘 보인다. 이곳에서 주변을 보면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이 서로 만나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은수사가 숫마이산의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또한 생산적이며 상징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은수사에서의 생산은 개인적이며 원초적인 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추상적이며 범위가 크고 거대한, 집단의 염원같은 것일 것 같다. 웅장한 두 개의 산이 이곳에서 랑데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황산대첩에서 왜구의 세력을 초토화시킨 뒤, 이성계는 귀경하는 도중, 바로 이 거대한 바위들이 만나는 장소인 은수사에서 자신의 필생의 생산적 꿈인 건국의 꿈을 구체화한 것 같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자면서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다한다. 은수사 태극전에는 이러한 광경을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圖)’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꿈을 땅에 심기 위해 청배나무 씨앗을 심었다. 그것은 건국의 씨앗인 셈이다. 이 청배나무가 650여년의 세월 저 편의 이야기들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은수사의 이성계 설화는 바로 마이산의 원초적 생산적 이미지의 또 다른 변용인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처럼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바로 탑사가 나온다. 탑사는 마이산이 가진 생산적 이미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화려하게 구현되는 곳이다. 북부 마이산 중턱에서 시작한 생산적 이미지가 드넓은 세상으로 내려가서 거대한 강물을 이루기 시작하는 곳이다.

 

마이산은 이처럼 다양한 개인의 꿈과 집단적 꿈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거대한 도량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마이산에 담은 사람들의 이러한 꿈들을 하나씩 제대로 음미하려면 북부 마이산에서 시작하여 탑사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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