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2 07:26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기고
일반기사

나는 전주에서 행복하고 싶다

▲ 강찬구 인터넷신문 ‘전북포스트’ 발행인
휴일에 사무실에 나올라치면 걱정부터 앞선다. 내 사무실은 전주한옥마을과 가까운 동문거리 홍지서림 근방에 있다. 사무실을 나오다 보면 차량에 막혀 오지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 속절없이 차량 행렬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전주가 왜 이리 됐나...?’라는 한탄과 함께 가슴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한옥마을은 전주 시민에게 약인가, 독인가...?’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예전의 모습을 잃은 전주. 더 이상 평온하고 넉넉하지 않은 전주. 음식을 먹기 위해서든, 산책을 위해서든 일부러 이곳을 찾는 전주 사람은 거의 없다. 한옥마을은 전주시민에게는 소외된 ‘섬’이다.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전주의 음식도 제 맛을 잃었다. 전주의 음식점도 관광객이 찾는 집, 현지인이 찾는 집으로 세분화돼 있다. 막걸리집은 더 이상 서민이 가던 선술집 개념이 아니다. 한옥마을은 현지인과는 유리된 세계다. 전주다움을 잃어버리고, 전주 시민에게는 외면 받는 별도의 관광 특구다. 한옥마을의 토지도 이미 전주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부동산 투기장이 되면서 지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가게임대료는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임대료가 오르니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한옥마을의 상업화는 동문거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전형이다. 이 지역도 투기의 대상이 되면서 땅값이 크게 오르고, 그나마 가난한 예술인들은 다시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전주에 사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컸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다양한 음식, 한적한 도시 분위기, 전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넉넉한 성정... 이런 것들이 전주의 진정한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광지화가 되면서 이런 것들은 급격하게 사라졌다. 전주만의 정체성이 빛을 잃었다.

 

전주에 언제 이런 관광객이 몰린 적이 있었느냐는, 그래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또 전주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끓어오르는 속을 다독거려 보지만 이 불편을 참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다.

 

관광 산업을 미래 무공해 산업으로 추앙하는 마당에, 이를 부정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 도시의 변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지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관광지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인다.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으면서 전주가 챙기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인지...

 

나는 전주에 사는 것에 대해 더 이상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성장하면서 기억하고, 앞으로 그리고 있는 전주는 흔적도 없어졌다. 그 넉넉함과 도타움은 사라지고, 혼잡한 도로와 천박한 상업화만 남았다. 단돈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신나던 막걸리집도, 그 정취도 찾을 길 없다. ‘전주 음식’의 명성을 찾아, 맛보여 달라는 외지인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음식점도 없다. 전주 한정식집들은 건물만 커진 채 상업화를 ‘당의정’으로 위장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이 주는 불편을 ‘전주가 언제 이래본 적 있느냐?’는 거시적 명분으로 감내할 수만은 없다. 나는 개개인이 행복해서 전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전주의 관광 산업과 관광객들을 위해 내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전주에서 여전히 행복하고 싶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