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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문화공간' 변신 시도하는 춘포역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역사…5년전 폐역 뒤 활기 잃어 / 문화·시민단체 가꾸기 사업, 역사 교육장으로 재탄생

▲ 지난 2일 익산 춘포역에서 열린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옛 교복을 입고 율동을 하고 있다.

문화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드는 ‘2016 시민기자가 뛴다-문화&공감’지면이 오늘부터 11월까지 매주 화요일 게재됩니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운영되는 ‘문화&공감’에서는 도내 곳곳에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이뤄지는 다양한 공동체활동과 지역만의 특색있는 문화를 가꾸는 단체나 공간 등을 조명하게 됩니다. 올해는 고길섶 문화비평가와 김정준 전북도립국악원 공연팀장,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서진옥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큐레이터, 이대건 고창 책마을 해리 촌장, 이수영 문화포럼 이공 대표가 참여합니다.

 

“아빠 왜 나무를 심는 거야?”

 

“응, 춘포역이 외롭지 않게 우리 예인이랑 감나무를 심어주는 거지.”

 

지은 지 100년이 넘는 춘포역에서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이 나무를 심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낡은 기차역이 어린 딸은 마냥 신기하다. 커다란 기차역만을 알고 있던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춘포역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지난 2일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사업으로 온새미로 창의체험지원센터, 익산시 관광두레, 곳간이 공동으로 트래킹과 나무 심기, 문화 체험이 진행됐다.

 

시간이 멈춰버린 춘포역.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참가했다는 30대 부모는 아이와 함께 감나무를 춘포역에 심었다. 부녀는 나무를 심으며 푸른 춘포역의 미래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 일제강점기에 역사 지어= 춘포(春浦)의 우리말식 본 이름은 ‘봄개’, 봄나루를 뜻한다. 봄이 드나드는 물가라는 뜻이다.

 

춘포역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다.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로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로 역사적·건축적·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춘포역사에 전시된 근대 생활문화유산.

우리 농민들로부터 높은 소작료를 거둬 식량을 수탈해간 현장으로, 아픔이 있는 과거가 춘포역을 포함해 일본 농장가옥, 정미소 등 역사적 장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또한 춘포역은 전주와 이리시(익산의 옛 지명), 군산시를 연결하는 철도중심지로 기차가 30분마다 있었으며, 당시 ‘까마귀 떼’라고 표현할 정도의 검은색 교복을 입은 많은 학생들이 통학을 위해 춘포역을 이용했다. 1970~80년대 익산지역에 섬유산업이 발전하면서는 근처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여자들이 많아져 ‘딸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예전 주변에는 빵집, 술집, 고깃집, 식당 등이 즐비한 번화가였다. 하지만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폐역이 되면서 점차 마을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 근대 역사문화 담긴 공간= 효용을 다한 것처럼 보였던 춘포역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 코레일로부터 지자체가 무상 임대를 받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중이다. 온기가 사라진 기차역에 사람들이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지역의 의식 있는 문화단체와 시민단체, 예술인들이 춘포역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춘포역은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추억의 장소다. 주변 볼거리로는 ‘호소가와 농장’이 복원되어 있고, 만경강 둑길을 걸을 수 있으며, 춘포 교회의 오래된 종, 일제 강점기 우정국 건물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춘포역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 이야기 그림 영상으로 기록= 춘포역에서는 역사를 활용한 문화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익산문화재단의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과 2013년 ‘모리에 서다’단체가 ‘달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지역 예술가들의 프로젝트 진행도 활발하다. ‘봄 느린 기차’라는 지역 예술가와 시민들의 모임에서 춘포역을 특별 관심 지역으로 지역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었던 역사(歷史)로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이 곳은 계절별로 ‘역사문화 답사 프로그램’이 운영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게 가족과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춘포역을 바로 알고 인근 지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나누는 행사들 위주다. 주로 가족 단위로 모집된 참가자들은 직접 춘포역과 주변을 걸으며 잊혀지는 옛 역사를 느끼며 문화를 통한 교육을 하고 있다.

 

춘포역에는 기차는 서지 않지만 역장은 있다. 제일 먼저 역에서 맞아주는 반가운 얼굴은 명예 역장 최중호 씨다. 코레일(구 철도공사)에서 정년퇴임을 한 명예 역장은 사명감을 가지고 낯선 방문객을 맞아준다. 역장을 통해 춘포역과 호남선, 전라선의 재미난 이야기는 보너스다.

 

춘포에 대한 관심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지역의 문화기획자와 글쟁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춘포의 첫 느낌과 그동안의 삶, 현재에 이르기까지 춘포와 역사에 관련된 생활을 개인의 삶과 시선으로 녹취, 서술, 사진, 영상 등 기록화 작업을 했다. 최진성 작가는 춘포역과 마을 연혁 등을 입체형 인포그래픽과 소품으로 만들고,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했다. 곽정숙 작가는 춘포역을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과 글쓰기, 현장체험학습 등을 진행했다. ‘춘포역 이야기’라는 작은 전시회도 열렸고, ‘춘포에 핀 국화 웹툰 공모전’도 진행됐다.

 

△ 문화로 덧입혀지는 봄나루= 춘포역은 지금 아트공간으로 대변신을 꿈꾸고 있다. 주변의 근대 건물과 연계해 하나의 살아있는 마을 박물관으로, 주민들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지역 어린이들과 방문객에게 추억의 공간과 역사 교육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지역 공동체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춘포문화학교’를 통해 마을 공동체 회복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춘포역을 교통 기능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주민 스스로가 나선 것이다.

 

춘포역을 무대로 주민, 지역문화단체, 지역예술가들은 저마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다. 이 상상은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고, 외로운 간이역 춘포역에 무지개가 뜰 날도 머지않았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오르세’역이었다. 오르세 역은 1986년 오르세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오르세미술관은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인상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간이역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최고의 모델중 하나다.

 

오래된 전통을 지켜가며 발전시키는 것은 낡은 것을 허물고 새 것을 짓는 것보다는 어렵다. 문화로 되살아나는 춘포역. 백년을 걸어온 그 길에 앞으로의 백년을 꿈꿔본다.

▲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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