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에 스며있는 역사·전설 스토리텔링 단절된 녹지축 연결을
등산이 취미인 필자가 최근 안양시 평촌 신도시에서 서울시내 공덕동으로 이사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집 근처에 큰 산이 없다는 점이었다. 근처에 관악산, 청계산, 모락산 등 가볍게 등산하기에 좋은 산들이 포진해 있는 평촌과 달리 마포구 공덕동에서 제일 가까운 북한산에 가려 해도 시내 교통체증을 감수하거나 지하철에 시달리면서 40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눈을 돌려 보니 아파트와 고층건물 일색인 집 주변에 듬성듬성 녹색의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효창공원은 산등성이에 조성되어 있는데 백범기념관과 임정요인의 묘역이 있고 주위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매번 갈 때마다 많은 주민들이 산책이나 운동에 열중인 모습을 보게 된다. 광풍과도 같았던 60∼80년대 개발시기 서울에 산재한 산자락을 자르고 파헤쳐 길을 내고 집을 짓는 와중에 지금의 효창공원이 남아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늘 생각하게 된다.
서울 고지도 중 하나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를 보면 서울 서쪽에 위치한 안산(鞍山)에서 남쪽이나 남서쪽으로 여러 산자락이 연이어 흘러내려 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효창공원 터는 정조의 첫째 아들인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곳인데 여기를 기점으로 남동, 남서로 갈라졌던 산줄기는 현재 보이지 않고 산등성이까지 들어찬 건물이나 주택들만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안산을 기점으로 남서쪽으로 흐르던 산줄기 중 현재 남은 부분은 금화산, 와우산, 연희산(궁동공원), 성미산 정도이다. 이들 산들을 연결하던 산줄기는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되면서 서울수복을 위한 치열한 전투(1950년 9월 연희산과 금화산), 시민아파트 붕괴(1970년 4월 와우산), 시민공동체의 개발반대(2001년∼2003년. 성미산) 등 서울시의 도시계획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지금은 자연환경을 훼손한데 대한 반성이라도 하듯 모두가 시민을 위한 근린공원이나 자연공원으로 잘 정비되고 관리되고 있어 다행이다. 가히 도심 속 오아시스요 보석과 같은 존재라 할만 하다. 자연의 녹지축을 가능한 보존하고자 하는 도시계획 사조와 주민의 생활복지를 최우선하는 지방자치제도의 순기능이 모아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한다. 물론 더 이상의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사회, 경제적 여건이 성숙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진 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주시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전주의 동쪽을 호위하듯이 서있는 기린봉에 올라 시내 쪽을 바라보면 자그마한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어 애초 어느 산자락으로 이어졌던 것인지 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으로 입성할 때 진입했다는 용머리고개는 용머리로로 확장되면서 완산칠봉과 다가공원을 단절시켜 놓았고, 건지산에서 흘러나온 가련산 역시 기린대로로 잘라져 고립되어 있다.
이제 더 이상의 녹지를 훼손해서는 안될 뿐더러 단절된 녹지축을 연결하고 각 산봉우리에 스며있는 역사와 전설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옥마을 슬로시티를 지향하고 있는 전주시에서는 한옥마을 내부는 물론 한옥마을과 인근의 기린봉, 승암산(치명자산)과의 연결로와 등산로를 걷기 쉽게 정비하는 한편 시내 곳곳에 고립되어 있는 산봉우리들을 연결하는 것이 도시경쟁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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