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정신질환에 아이는 청각·언어장애 / 딸 돕기위해 한국 온 아빠마저 결핵 걸려 / 예수병원 진료비 감경에도 추가비용 막막
“빨리 퇴원시켜 주세요. 마스크 많이 쓰고 비행기 타면 괜찮을 거예요.”
한국에 오자마자 결핵으로 인해 곧바로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레반권’씨가 눈물을 닦으면서 하는 말이다.
레반권 씨(62세)는 결핵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1개월을 넘겼다. 이제 겨우 1개월을 넘겼을 뿐인데, 레반권 씨의 병원비는 1000만원을 넘겨버렸다. 레반권 씨는 걱정이 태산 같다. 한국으로 시집 온 딸의 가사 일을 돕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가사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딸에게 짐만 되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결핵은 감염성 질병이고 완치될 때까지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로써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10년이 된 그의 딸 레티휜 씨는 삼중, 사중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들(9세)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갖고 있고 주위 집중력에도 문제가 있어 돌보기가 무척 어렵다. 남편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어 혼자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봐야 하고, 결핵에 걸린 친정 아빠도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레티휜 씨는 얼마 전 시아버지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오랫동안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셔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는 친정 아빠의 질병과 병원비 문제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다. 레티권 씨가 입원해 있는 전주 예수병원은 1000만원이 넘는 의료비용을 500만원 수준으로 감경하고 병원 내부의 사회사업실과 원목실을 통해 추가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수병원은 지금까지 병원 내부에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 이민자 등에 대한 진료비 감경 등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예수병원 직원들은 의료적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을 지원하기 위해 급여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는 등의 인도적 후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가 많이 발생함에 따라 지원에도 한계를 맞고 있다. 결핵으로 입원해 있는 레티권 씨의 치료비로 그동안 모은 기금을 모두 지출할 경우 다른 외국인 환자를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병원 이외에 사랑의 열매 등에서도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데, 진퇴양난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지원이 잘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 외국인 결핵관리 강화= 레반권 씨는 한국에 친척방문비자(C3-1)를 가지고 입국했다. 이 비자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90일이다. 이 비자는 단기체류 비자이기 때문에 91일 이상 장기체류를 하려할 경우에는 동거방문비자(F1비자)로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동거방문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91일 이상 국내에 장기체류해야 할 경우 건강진단서를 의무적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야 한다.
건강진단서 의무화는 2016년 3월 이전에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의 건강진단서 의무화 조치로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무부의 건강진단서 제출 의무화는 외국인 결핵관리 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시하고 있다.
△외국인 결핵 관리 대책 허점= 보건복지부와 법무부의 계획에는 허점이 있다.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레반권 씨는 외국인 결핵관리 계획이 발표되고 시행된 지난 3월2일 이후인 3월 말에 입국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레반권 씨는 이미 베트남 재외공관에서 건강검진을 한 후 건강진단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 결핵이 발견됐다면 한국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레반권 씨가 한국에 입국한 이후의 대책에 있어서도 미흡한 점이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외국인이 건강검진을 신청할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외국인이 건강검진을 하는 이유는 건강검진서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야만 체류비자를 변경·연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류비자 변경·연장은 한국에 입국한 지 90일 이내에만 하면 된다. 따라서 체류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하기 이전에는 정부의 외국인 결핵 관리 계획에 대한 어떠한 설명과 정보를 접할 수 없다. 레반권 씨의 경우 건강검진을 받기 이전에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이때 결핵이 발견됐다.
외국인에 대한 결핵 관리가 입국시 재외공관과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통해 잘 홍보되고 관리됐다면 문제는 이보다 쉬워졌을 것이다. 입국후 보건소를 통해 검진이 빨리 이뤄지고 국립결핵병원에서 저가에 치료를 받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정부의 정책적 대책 미흡과 홍보 등의 부족으로 외국인은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결핵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중인 레반권 씨는 “친정 아빠로서 한국에 와 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오히려 질병으로 인해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고 눈물을 훔치면서 “빨리 베트남에 가고 싶다. 도와주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외국인 결핵관리를 입국 전과 입국 후로 나누고 입국 후 거소신고를 하기 전 90일 이내의 대책 등이 좀 더 세밀하게 마련될 필요성에 제기된다. 향후 외국인 결핵관리 방안이 좀 더 세밀하고 면밀하게 개선돼 외국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한국 방문 결혼이민자 친정 부모 등 입국뒤 3개월간 건강보험 사각지대
결혼이민자 친정 부모의 방문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법무부 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2016년 3월)에 의하면 방문동거비자(F-1)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8만6297명으로 나타났다. 방문동거비자는 자녀 돌봄이나 가사 돌봄을 전제로 부여되는 비자다. 결혼이민자 친정 부모의 방문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다문화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함에 따라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자녀와 가사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 친정 부모는 한국에서 취업활동도 할 수 없고, 입국 후 3개월 이내에 의료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결혼이민자 친정 부모가 의료적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3개월을 경과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외국인 등에 대한 특례)에 따라 외국인도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등록신고(국내거소신고)를 반드시 해야 하고 입국일로 부터 3개월이 경과해야만 취득이 가능하다. 다만 유학, 결혼의 사유로 3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이 명백한 경우 국내에 입국한 날로부터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유학, 결혼에 해당하지 않는 결혼이민자의 친정 부모는 건강보험 자격을 곧바로 취득할 수 없다. 그리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별도의 동거방문비자(F-1)를 발급받아야 한다. 또 유학생과 결혼이민자는 건강보험자격을 취득하기 이전이라도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취득자격의 요건이 발생했으나 건강보험을 가입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건강보험료를 소급해서 납부할 경우 보험혜택도 소급적용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민자의 친정 부모는 한국에 입국 후 3개월이 경과돼야만 기본적인 건강보험의 취득 요건이 발생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3개월 기간 동안은 의료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또한 건강보험의 소급혜택도 자격취득 요건이 발생되는 시점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결혼이민자의 친정 부모는 3개월 동안은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정규 이주자에게 의료 서비스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을 정부 입장에서 자비나 시혜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지만 국제 인권법에 따르면 정부는 관할권 내의 모든 사람에게 건강과 관련된 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비정규 이주자의 건강권은 출신 국가의 정부가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인정될 경우 체류자격 여부에 관계없이 체류국가의 정부가 보호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이민자의 친정 부모 등 외국인 등록신고가 안된 경우에라도 의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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