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20:59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문화&공감
일반기사

[문화&공감]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

상인회-행정-생산·가공·유통 공동체, 장터 부활 꿈꾸다

▲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고창 전통시장 전경.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은 고창읍 전통시장, 3일과 8일 열린다고 해서 삼팔장이라고 했다. 오일장 깊은 구석에 3일이거나 8일이거나 어김없이 팥죽집이 자리를 펴곤 했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넘치거나 말거나 가득 퍼담은 달달한 팥칼국수 한 그릇, 손때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낮은 키 3인용 나무의자. 장날 인파에 밀려 먹던 꼴로 자리를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시절의 장마당은 소년들의 놀이터였다. 복판에서 밀려난 것은 팥죽집만이 아니었다. 대장간도 그랬다. ‘슈욱슈욱’ 풀무질 소리에 불이 일고 쇠가 익고, 캉캉캉 높은 톤 망치질이 수도 없이 이어지면 그랬다. 흙과 물과 나무와 돌과 겨루는 서슬이 퍼런 쇠붙이들이 하나하나 시렁에 내걸리기 시작한다. 거친 숨, 거친 손과 근육을 엿보다 이내 ‘뭐든 다 고치는’ 신기료장수 곁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삼십년 더 지난 고창장날 풍경이다.

 

△ ‘장을 본다’에서 ‘마트에 간다’

▲ 전통시장 특화상품 개발 품평회 장면.

아직 고창에는 대기업 대형마트가 없다. 대신 농협이 운영하든지 혹은 영문자 이니셜이 붙은 중소규모 마트가 여럿이다. 그 탓일까, 여느 도시만큼이나 시장보다 마트가 일상과 더 가까운 시절이 되었다. ‘장을 보러 간다’는 표현은 자취를 감추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 혹은 그저 ‘마트에 간다’가 되었다. 장을 보는 공간이 시장에서 마트로 시나브로 바뀐 것이다. 마트가 장보기의 주체가 되어가는 동안, 시장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팥죽 한그릇에 마른 허기를 달래던 낡고 닳은 나무의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은갈치 한무더기 흥정하던 카랑카랑 목소리들은 다 어디 갔을까. 불바람 일으키던 풀무질 거친 숨소리는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

십년에 변한다던 강산이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시절이라, 전통시장의 불황은 또 어딘가의 활황으로 변했을 터다. 그것이 말로 풀어져 ‘마트에 가다’이다. 마트로 향하는 걸음을 다시 시장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상설시장 골목에 지붕을 씌워 편의를 돕는다든지, 때마다 들썩들썩 가요제를 연다든지, 온누리상품권으로 할인정책을 도입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도 대세를 돌려놓기 어려웠다.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이다.

 

고창군(군수 박우정)이 매개가 되어 고창전통시장 상인회(상인회장 최만영)와 고창의 다양한 생산·가공·유통 공동체가 모여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장상인회와 고창공동체협의회가 고창군 민생경제과와 함께 준비한 고창 대표상품겨루기, 시장 한복판에 모던한 품새로 카페와 겸하는 공동체공동판매장 개설, 시장골목을 풍성하게 하는 이동식 매대 운영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돋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고창공동체들과 품 나눔이 있다.

 

△ 대표먹거리를 대표브랜드로

 

지난 5월 고창전통시장 특화상품 선정행사를 진행했다. 고창 대표 공동체들이 발굴해낸 10가지 먹을거리 상품이 무대에 올랐다. 장날 하루, 시장이용자를 비롯해 시장상인들, 음식전문가들의 매운 품평을 거쳐 화산마을공동체의 청보리빵, 다홈공동체의 복분자장어파이, 모꼬지공동체의 바지락죽이 선정되었다. 고창을 대표하는 청보리, 복분자, 장어, 바지락을 맛깔 빛깔로 잘 버무린 결과다. 이 대표 음식상품을 6월 장날에 맞춰 진행한 전통시장투어에서 방문객들에게 맛보였다. 결과는 대만족.

 

“이렇게만 시장이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시도가 아직은 좀 낯설지만 시장상인들도 같은 배를 탄 공동체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서 나가기를 바랍니다.”

 

전통시장 상인회 최만영 회장의 말이다. 결이 다른 두 개체가 만나서 어렵사리 이뤄가는 화음은 어떤 색깔일까.

 

△ 고정 매대와 이동 매대의 화음

▲ 전통시장 이동식 매대를 운영하는 상인이 활짝 웃고 있다.

전통시장 한복판과 시장골목을 채우는 두 가지 방식 매대 운영도 시작했다. 하나는 고정식, 하나는 이동식이다. 공동체공동판매장은 시장상인회에서 마련한 공간에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운영을 시작했다. 커피콩빵, 구운 소시지 같은 가벼운 스넥과 커피류 음료를 곁들여 고창 공동체들이 만들고 유통하는 다양한 제품들(북분자장어파이, 김부각, 아로니아분말, 고구마말랭이, 옻된장과 옻담수, 천일염, 복분자음료, 천연차, 질마재농장의 천연 어린이과자, 사임당 한과 등)이 진열되는 판매장이다.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의 거점역할을 한다.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동식 매대를 택했다. 점이 공동판매장이라면 이동식 매대는 확장하는 선이고 면이다. 모두 8개로 운영하는 이동식 매대는 고창공동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전통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침체된 편에 배치해 운영한다. 제철 과일로 만드는 시절음료매대를 비롯해, 전통부각, 바지락죽과 비빔밥, 순쌀빵과 보리커피, 기능성 유기황콩나물, 모싯잎떡과 복분자 호박식혜세트, 청보리빵 매대로 시장 손님들의 걸음을 시장 깊숙이 끌어당기고 있다.

 

△ 공동체 역량으로 무한 증식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에 불어닥친 유행이다. 고창의 시도가 남다른 것은 지역의 자생 생산공동체조직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이제 3개월 남짓 서로 색깔을 맞춰보았다. 앞으로가 관건이다. 전통시장활성화 바탕은 다졌으니, 앞으로 시장신문 발간, 시장영화제, 시장팜파티와 시장투어, 프리마켓 공동프로젝트 등으로 확장하는 일이 아스라하다.

 

“고창 전통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는다는 것은 고창 전체가 생동한다는 것을 뜻해요. 전통시장에 오래 살아온 상인분들 혼자만의 일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고창의 공동체가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하는 것이구요.” 고창공동체협의회 이창환 사업국장의 말이다.

▲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